예레미야
2013.09.15 09:52

(91강) 하나님의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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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0:1-6http://onlycross.net/videos/jer/jer-40010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설교>

 

세상은 신의 존재를 각자 개별적인 입장에서 이해합니다. 때문에 세상이 이해하는 신은 인간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반영하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입장이라는 것을 꺼낼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는 늘 피조물의 입장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나온다면 하나님이 왜 나 같은 존재를 지으시고 세상에 존재하게 하셨는지를 묻게 됩니다.

 

 

어떤 인간도 자기 입장을 앞세우게 되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불만만 가득해집니다. 자신의 뜻대로 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먼저 인간은 심판 외에 달리 길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나를 생존하게 하심을 깨달으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기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자기 입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유다가 완전히 패망하고 바벨론 군대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데 그 가운데 예레미야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2-3절)고 말합니다.

 

 

사령관의 말을 생각해 보면 마치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고, 유다에 임한 재난의 이유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느부사라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고 그들의 신,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잠시 감동하게 하셨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귀의 입을 열게 하셔서 발람의 죄를 책망하게 하신 것처럼(민 22:27-33) 이방인의 입을 열어 유다의 죄를 책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굳이 예레미야를 불러서 하기 보다는 유다의 포로를 향해서 말하는 것이 더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령관의 말은 하나님이 유다의 죄를 책망하기 위해 입을 열게 하신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령관은 지금 신에 대한 자기의 상식에 따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령관도 유다가 하나님이란 신을 믿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유다의 선지자이며 무슨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었는지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해 재난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포대로 유다가 망했습니다. 사령관은 그런 유다의 형편을 그들의 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신에 대한 세상의 상식은 신에게 죄를 범하면 신의 진노를 사서 재앙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식의 눈으로 유다를 본다면 유다는 그들의 신에게 죄를 범하여 재앙을 받은 것이 됩니다. 예레미야의 선포가 이것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사령관은 예레미야에게 그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에게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했던 욥의 친구들도 하나님을 이러한 시각을 바라본 결과입니다.

 

 

느부사라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의해 패망한 유다의 현실만 생각합니다. 엄청난 재앙을 받게 된 것이 너희의 신에게 죄를 범한 결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바벨론의 강함과 유다를 정복한 것을 자기들의 신을 잘 섬겼기 때문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잘되고 못되는 근거를 신에 대한 인간의 행함에 두는 것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현대 교회도 이러한 상식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 입장에서 불만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열심히 잘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는가?’라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불평으로만 반응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유다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나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신에 대한 땅의 상식에 붙들려서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풀어 주면서 바벨론으로 가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든 뜻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바벨론으로 가면 선대하겠다고 합니다. 유다가 망한 상황에서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예레미야에게는 유익입니다.

 

 

예레미야를 선대하겠다는 사령관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에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유다에 남고자 합니다. 사령관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바벨론 왕이 유다를 다스리도록 세운 그다랴에게 돌아가서 백성들과 함께 살거나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령관은 예레미야를 관대하게 대하며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다 백성들에게는 분노를 사고 죽임을 당할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같은 민족에게는 분노의 대상이 된 예레미야에게 사령관은 왜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요? 유다 백성보다 사령관이 더 인품이 훌륭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원인은 각기 다른 입장 차이에 있습니다.

 

 

유다의 입장에서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한 예레미야는 반역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느부사라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예레미야의 말은 오히려 호의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바벨론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유다를 저주한 것이고, 바벨론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다도 느부사라단도 자기 입장에서 예레미야의 말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세워서 말씀하신 것은 유다로 하여금 자기 죄를 보게 하심으로 마음을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다도 느부사라단도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알고 있으면서도 회개가 없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아예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고 유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이라고 해서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호의적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도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똑같이 자기 입장에 붙들려 있었던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가 취할 입장은 저주 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이 입장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나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 은총의 세계를 볼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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