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9.22 09:56

(92강) 총독 그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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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0:7-16http://onlycross.net/videos/jer/jer-40071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7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10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도 바벨론의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을 위하여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이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하지 말 것이니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설교>

 

바벨론 왕이 유다를 점령하고 돌아가면서 그다랴를 유다를 통치할 총독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남녀와 유아와 포로로 끌고 가지 아니한 빈민들을 그다랴에게 위임합니다. 또한 그다랴가 총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들에 있던 지휘자와 부하들도 돌아옵니다.

 

 

그다랴는 아히감의 아들로 유다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모여든 백성들과 함께 유다를 재건하고 힘을 모아 바벨론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은데 그다랴는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9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미스바에 살면서 갈대아 사람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그다랴는 마치 친 바벨론 정책을 펴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벨론에게 대항할 수 없으니 유다의 장래를 위해 바벨론을 섬기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을 섬기라는 것은 예레미야도 외쳤던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다랴의 아버지 아히감은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유다의 멸망을 선포한 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다랴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을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바벨론을 섬기라는 것도 예레미야가 외쳤던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유다가 사는 길이 바벨론을 섬기는 것에 있음을 알고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모압과 암몬 에돔 등 여러 지방으로 도망쳐 있던 유다 사람들도 그다랴가 총독이 된 소식을 듣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다랴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요하난이 알고 그다랴에게 미리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다랴는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요하난이 그다랴를 죽이려고 하는 이스마엘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요하난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왜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다랴가 바벨론에 의해서 총독으로 세워졌다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그다랴가 유다를 배신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다랴는 바벨론을 섬기자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누가 들어도 바벨론 편에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다랴에게는 예레미야가 함께 했습니다. 따라서 그다랴가 잘못된 말을 했다면 예레미야가 지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다랴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잠잠합니다. 그것은 그다랴가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다랴를 죽이고자 한 것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죽이는 것이 유다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다랴를 죽임으로 바벨론에게 저항하고 바벨론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유다를 위한 애국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벨론을 섬기라는 것은 유다가 자신의 멸망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것을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다랴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벨론을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이려고 한 것은 유다의 멸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런 이스마엘의 모습이 오늘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이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항상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패하면 ‘예 나는 실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실패야 합니까?’라며 불만을 토해냅니다.

 

 

만약 여러분께 ‘당신은 지옥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한다면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내가 왜 지옥가야 하느냐’고 발끈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지옥이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저 사람보다 못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결국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는 모든 고백은 입에 발린 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만 드러날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 일에 열심입니다. 자기 일이 형통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일이 형통하든 실패하든 인간은 하나님 관계에 있지 못하면 영원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내 일만 형통하여 잘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운명에 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운명을 신이 정한 것이라면 운명에 지지 않고 싸워서 이기겠다고 합니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서 원하는 인생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실패했다면 실패와 싸워 이겨서 기어코 성공함으로 운명을 이기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을 말하는 사람들도 운명의 끝의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실패와 고통을 운명과 연결하여 생각할 뿐 운명의 끝이 저주로 인한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운명을 이기겠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운명을 이기는 자도 없습니다. 신자는 운명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이 자신에게 당연함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운명을 이기는 능력은 주께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소망을 주께 두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는 멸망이라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멸망의 현실을 거부하고 이겨보고자 하는 것은 멸망케 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기 현실만 생각하기 때문에 더 나은 현실을 추구하고 좇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즐거움이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길로 이끌어 가신 것처럼 우리 또한 내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실패라고 해도 그로 인해 나의 존재됨을 알고 주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적이고 성공한 인생입니다.

 

 

신자는 주님과의 관계에 붙들려 있는 것만으로 그 인생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처지를 가지고 인생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로 인해 주어진 모든 자리에서 생명이신 주를 바라보는 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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