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9.29 09:58

(93강) 그다랴 암살

조회 수 32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41:1-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4101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5 그 때에 사람 팔십 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7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

8 그 중의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

 

<설교>

 

여러분은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신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상식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현실의 문제에서 생각한다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심지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겪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일들까지도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 일이 큰 고통과 아픔이 되어서 부당하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결론은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인데 무슨 이유로 나를 고통과 아픔에 있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서 신자가 붙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현실에 대한 분노입니다.

 

 

물론 분노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결론 안에서 주어진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그 일을 통하여 내게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을 수 있고,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며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로 만들고자 하신다는 시각에서 현실에서 바라보는 것이 신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지금 주어진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말씀은 현실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바벨론이 유다를 점령하고 돌아가면서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란 사람이 그다랴를 암살하려고 합니다.

 

 

이스마엘이 부하 10명을 데리고 그다랴가 있는 미스바로 옵니다. 그리고 미스바와 함께 떡을 먹는 중에 이스마엘의 부하 열 사람이 일어나 그다랴를 칼로 살해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갈대아 군사들까지 죽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벨론과 그다랴에 대한 분노라고 여겨집니다.

 

 

이스마엘은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로 왕의 친족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상태에서 바벨론에 의해 총독으로 세움 받고 유다를 다스리고 있는 그다랴에 대해 적대감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적대감은 그다랴와 함께 하던 유대인에게까지 이어지고 결국 그 모두를 살해함으로써 주어진 현실에 대한 보복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유다가 망하고 왕이 끌려간 모든 현실이 그다랴와 같은 사람 때문에 되어 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거사는 성공하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 일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황을 가지고 성전으로 향해 가는 80명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었다는 것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이들은 예루살렘 멸망을 슬퍼하며 이미 무너져 버린 성전을 향하여 가고 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을 이스마엘이 울면서 영접하며 그다랴에게 가자고 합니다. 이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80명의 순례자들은 이스마엘을 따라갔고 성읍 중앙쯤 이르렀을 때 이스마엘이 부하와 함께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 중의 열사람이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어 두었으니까 죽이지 말라’고 사정하자 그들은 살려주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죽인 자의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 메우고 바벨론 왕이 그다랴에게 위임했던 백성들을 사로잡아 암몬 자손에게로 떠납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요하난과 그 부하들이 이스마엘이 행한 일을 듣고 군사를 데리고 이스마엘에게로 향하던 중 기브온 강가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요하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암몬으로 도망치게 되고, 요하난과 부하들은 이스마엘이 끌고 가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다랴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바벨론 왕이 알게 되면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유다가 멸망한 후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한 일은 현실에 대한 자기 분노를 드러내며 죽고 죽이다가 결국 자기 안전을 위해 힘 있는 나라로 도망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들은 유다의 멸망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다가 멸망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과 절망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선지자가 외쳤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이 모든 일이 선지자의 말대로 되지 않았는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현실에 대한 자기 분노를 드러낼 뿐이고 자기 안위를 살피며 살길을 도모하는 일에 급급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몬과 애굽을 피난처로 삼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할 수 없습니다. 유다가 망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유다를 지켜주고 사랑하신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헛수고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어진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항상 현실의 문제로 인해 불만을 갖고 분노하며 자기 육신에 도움 되는 길만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한 가지 놓치는 것은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으로 인도하셨는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유다는 평소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이방인과 다르지 않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실에 대한 분노만 드러내고 자기 안위를 위해 힘을 의지하는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행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을 통해 유다의 그런 실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현실에서도 분노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저주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일에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깊은 자기 죄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됩니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가?’라는 불만이 가득합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는 이런 일을 겪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는 자기에 대한 미련이며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죄를 보게 하시고 죄에서 건지신 예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모든 현실에 하나님이 계시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심을 생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0 예레미야 (108강) 마지막 장의 의미 신윤식 2014.02.02 3375
109 예레미야 (107강) 던져진 책 신윤식 2014.01.26 3144
108 예레미야 (106강) 버리지 않음 신윤식 2014.01.19 3078
107 예레미야 (105강) 여호와의 계획 신윤식 2014.01.12 3181
106 예레미야 (104강) 다른 운명 신윤식 2014.01.05 3080
105 예레미야 (103강) 각 나라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9 3410
104 예레미야 (102강) 모압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2 3156
103 예레미야 (101강) 블레셋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15 3194
102 예레미야 (100강) 애굽 멸망에 대한 예언 신윤식 2013.12.03 4228
101 예레미야 (99강) 하나님의 큰 일 신윤식 2013.11.24 3234
100 예레미야 (98강) 신앙과 종교 신윤식 2013.11.10 3179
99 예레미야 (97강) 계속되는 말씀 신윤식 2013.11.03 3109
98 예레미야 (96강) 말씀보다 애굽 신윤식 2013.10.27 3065
97 예레미야 (95강) 애굽으로 가지 말라 신윤식 2013.10.20 3174
96 예레미야 (93강) 좋든지 좋지 않든지 신윤식 2013.10.06 21508
» 예레미야 (93강) 그다랴 암살 신윤식 2013.09.29 3211
94 예레미야 (92강) 총독 그다랴 신윤식 2013.09.22 5466
93 예레미야 (91강)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윤식 2013.09.15 3176
92 예레미야 (90강) 멸망과 구원 신윤식 2013.09.08 3195
91 예레미야 (89강) 에벳멜렉 신윤식 2013.09.01 31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