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11.03 10:00

(97강) 계속되는 말씀

조회 수 310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44:1-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4401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7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설교>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데리고 기어코 애굽으로 갑니다. 예레미야가 애굽에까지 그들과 동행하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예레미야를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그들과 동행하게 하신 것은 애굽에 간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선지자의 역할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동행은 여전히 그들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책망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포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라고 말합니다.

 

 

43:7절에서는 요하난 일행이 애굽 땅 다바네스에 들어온 것으로 말하는데, 44장은 애굽의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다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이 임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요하난 일행이 애굽에 들어 온 후 많은 시간이 흘러서 유다 사람이 애굽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으로 피신한 그들도 애굽에서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애굽의 무엇에 익숙해졌는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8절을 보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애굽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익숙해진 것은 다른 신을 분향한 것입니다. 애굽으로 피한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애굽의 부유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부요가 이들에게는 신의 축복으로 보였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비교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부요를 애굽이 섬기는 신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부요를 위해 애굽의 신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2절에서 유다가 겪은 재난에 대해 다시 상기시키면서 재난의 이유를 다른 신을 분향하는 악행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재난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끊임없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는 사실도 말합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폐허가 되고 황무지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유다의 남은 자들은 재난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재난의 이유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재난에서 자기 살길만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말씀도 무시한 채 애굽으로 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굽의 부요함만 보였을 것이 자명합니다.

 

 

이런 유다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그것이 예레미야를 동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유다가 어떤 존재라고 해도 말씀을 주시고 마음을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며 사랑입니다.

 

 

신자가 세상에 눈을 돌리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은 볼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보다 복을 누리는 것 같은 사람들만 보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고 잘사는 복을 위해 신을 찾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으로 간 유다 백성들의 실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믿음이 없이도 풍요롭게 잘 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가치를 세상의 부요보다 못한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 됩니다. 때문에 말씀을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세상을 향한 관심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애굽에서 살기를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를 처단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 엎드러질 것임을 경고합니다. 이 경고의 말씀에 대해 그들은 또 다시 인간의 완고함을 드러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16절). 그리고 자신들이 한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자신들이 본래 하던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왜 그토록 우상 숭배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그들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했을 때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않았는데 분향을 폐한 후부터 모든 것이 궁핍해지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한 것으로 말합니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을 자신들이 어떻게 행했는가를 기준해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상을 섬겼을 때 잘 살았고 우상을 폐했을 때 재난이 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사는 길을 위해 우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완고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잘 사는 길에 대한 것이 아니면 듣지 않겠다는 것이고 자신들의 말과 생각대로 반드시 행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신을 잘하면 복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잘하면 복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복을 받고 신앙생활에 게으르면 그에 따른 경고와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된 것은 신앙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고 어려움이 있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간주할 것입니다. 결국 은혜와는 거리가 멀어질 뿐입니다.

 

 

하나님께 잘해서 복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께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서 자기 행위를 자기 잘남으로 이어가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는 나의 완고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완고함을 보게 되면 나에게 주어질 것은 진노의 심판 밖에 없음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러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0 예레미야 (108강) 마지막 장의 의미 신윤식 2014.02.02 3375
109 예레미야 (107강) 던져진 책 신윤식 2014.01.26 3144
108 예레미야 (106강) 버리지 않음 신윤식 2014.01.19 3078
107 예레미야 (105강) 여호와의 계획 신윤식 2014.01.12 3181
106 예레미야 (104강) 다른 운명 신윤식 2014.01.05 3080
105 예레미야 (103강) 각 나라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9 3410
104 예레미야 (102강) 모압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2 3156
103 예레미야 (101강) 블레셋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15 3194
102 예레미야 (100강) 애굽 멸망에 대한 예언 신윤식 2013.12.03 4228
101 예레미야 (99강) 하나님의 큰 일 신윤식 2013.11.24 3234
100 예레미야 (98강) 신앙과 종교 신윤식 2013.11.10 3179
» 예레미야 (97강) 계속되는 말씀 신윤식 2013.11.03 3109
98 예레미야 (96강) 말씀보다 애굽 신윤식 2013.10.27 3065
97 예레미야 (95강) 애굽으로 가지 말라 신윤식 2013.10.20 3174
96 예레미야 (93강) 좋든지 좋지 않든지 신윤식 2013.10.06 21508
95 예레미야 (93강) 그다랴 암살 신윤식 2013.09.29 3211
94 예레미야 (92강) 총독 그다랴 신윤식 2013.09.22 5466
93 예레미야 (91강)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윤식 2013.09.15 3176
92 예레미야 (90강) 멸망과 구원 신윤식 2013.09.08 3195
91 예레미야 (89강) 에벳멜렉 신윤식 2013.09.01 31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