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12.03 10:46

(100강) 애굽 멸망에 대한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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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6:1-12http://onlycross.net/videos/jer/jer-460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애굽에 관한 것이라 곧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유브라데 강 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

3 너희는 작은 방패와 큰 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

4 너희 기병이여 말에 안장을 지워 타며 투구를 쓰고 나서며 창을 갈며 갑옷을 입으라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본즉 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

6 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며 용사도 피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 북쪽에서 유브라데 강 가에 넘어지며 엎드러지는도다

7 강의 물이 출렁임 같고 나일 강이 불어남 같은 자가 누구냐

8 애굽은 나일 강이 불어남 같고 강물이 출렁임 같도다 그가 이르되 내가 일어나 땅을 덮어 성읍들과 그 주민을 멸할 것이라

9 말들아 달려라 병거들아 정신 없이 달려라 용사여 나오라 방패 잡은 구스 사람과 붓 사람과 활을 당기는 루딤 사람이여 나올지니라 하거니와

10 그 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복일이라 칼이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를 넘치도록 마시리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쪽 유브라데 강 가에서 희생제물을 받으실 것임이로다

11 처녀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 네가 치료를 많이 받아도 효력이 없어 낫지 못하리라

12 네 수치가 나라들에 들렸고 네 부르짖음은 땅에 가득하였나니 용사가 용사에게 걸려 넘어져 둘이 함께 엎드러졌음이라


 

 

<설교>

 

본문은 유브라데 강 가 갈그미스라는 곳에서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애굽이 패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2절을 보면 이 예언은 유다의 여호야김 왕 4년에 주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애굽이 바벨론에게 패하여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애굽만 멸망하지 않습니다. 47장에서는 블레셋, 48장에서는 모압, 49장에는 암몬, 헤스본, 에돔, 다메섹, 게달, 하솔, 50장에서는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애굽이 바벨론에 의해 패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면 ‘애굽과 바벨론 누가 더 강한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힘과 상관없이 애굽은 패하기로 작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보면 애굽 군대가 전쟁을 준비합니다.

 

 

3절에는 방패를 준비하고 4절에서는 기병을 준비하는데 당시 애굽은 말이 많아서 기병이 강했다고 합니다. 애굽도 자신들의 군사력을 믿었기 때문에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애굽은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한 전쟁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이치에서는 강자가 승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자가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을 강자로 만들어 주는 힘이 되는 돈과 권력에 마음을 둡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생각하면 세상의 이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약자가 승리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승리할까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승리할까요? 하지만 애굽을 무너뜨린 바벨론 역시 결국 무너집니다. 때문에 지금의 승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의미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방인에 대한 예언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의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의 부요와 강함이 복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애굽에 대한 예언은 유다의 멸망 이전에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유다의 멸망 이전에 유다가 강대국으로 여기며 부러워했던 유다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셨을까요? 그것은 이방 나라가 누리는 부요와 힘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다가 부러워하는 이방의 부요와 힘은 하나님에 의해서 결국 무너지고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방의 부요와 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부요와 힘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백성에게 부요와 힘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요와 힘보다 더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유다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했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상의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을 추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참된 백성인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했습니다. 강한 애굽이 무너진다는 예언을 불신했을 수도 있고 나중에 어떻게 되도 좋으니까 이방 나라처럼 살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가 무너졌을 때 유다에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피신해서 그들의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애굽의 부요를 향한 집착이 그들을 그 길로 이끈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는 애굽을 포함한 모든 이방 나라는 무너진 나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참된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말씀 안에서 이방 나라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보인 현실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의 무지이며 오늘 우리의 무지이기도 합니다. 말씀 안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현재의 현실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의 부요와 힘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불변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심판이라는 뜻을 정하셨다면 현재의 강함과 부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말씀 안에 있는 신자입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본즉 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고 말합니다. 방패와 기병을 준비했지만 그들의 준비는 모두 허사가 되고 결국 패하여 도망하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일은 우리의 준비와 자신감으로 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런 준비도 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무너지게 하시는 것은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을 구하는 일에 뜻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다를 지키는 것은 세상의 부요와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말씀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부요와 힘은 결코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세상의 부요와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참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주셨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알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가 그리스도로 인해 부요하고 그리스도로 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으로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구원하여 돌아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28절의 말씀처럼 이방 나라들은 다 멸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함 안에 있는 백성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도 징계 받아야 할 죄 있는 자일뿐입니다. 그런 그들을 사라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고 자비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로 인해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유다처럼 자기 생존 문제를 앞세우며 눈에 보이는 부요와 힘을 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부요와 힘을 희망으로 삼으며 세상의 악을 따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 또한 자신의 욕망 안에서 해석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은혜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의 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일 뿐입니다. 죄 있는 자고 징벌을 받아야 할 자가 우리 자신임을 염두에 둔다면 세상의 끝에서 우리를 붙잡아 구출하실 분은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의 끝을 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부요와 힘이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 끝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붙들려 있다는 그것으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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