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12.22 10:14

(102강) 모압의 멸망 예언

조회 수 315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48:1-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4801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모압에 관한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오호라 느보여 그가 유린 당하였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2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조용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뒤쫓아 가리라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폐와 큰 파멸이로다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루힛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호로나임 내리막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7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

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설교>

 

애굽과 블레셋,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모압에 대한 멸망 예언은 모두 죄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 나라에 대한 멸망 예언을 대할 때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과 유다까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역시도 이방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죄에 속했음을 말하는 것이고 죄로 인한 그들 운명 또한 이방 나라와 다를 바 없음을 보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또한 죄와 상관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에 붙들려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가 용서되었으니 더 이상 죄를 말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뜻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죄가 용서된 죄 없는 거룩한 자로 천국 백성이 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용서의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 용서에는 거저주신 은혜를 찬송하고 감사하게 하시며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 5:20)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죄를 알지 못하면 은혜 또한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죄의 무거움을 알지 못하는데 용서의 가치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죄를 볼 수 있도록 끌어가고 넘치는 죄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의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가 가장 크고 존귀한 사건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에서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빈틈이 전혀 없이 갚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10절의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는 말씀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호와의 일은 모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는 모압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일으키신 적군입니다. 그들이 모압을 멸망하는 일을 할 때 모압을 불쌍히 여겨서 칼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은 인간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서 철저하게 시행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에 있어서는 유다도 다른 이방 나라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에게는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은 유다가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았지만 이방 나라와는 다르게 대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 나라와 유다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다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문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존재한다는 것이 세상의 부요와 힘을 근거하여 존재하는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은총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은총을 알지 못했던 유다는 이방 나라가 세상의 부요와 힘을 근거하여 존재하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처럼 부요와 힘을 자신들의 존재 기반으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왜 존재하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방 나라의 멸망 예언은 단순히 이방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 나라가 망한 것을 굳이 유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유다가 하나님의 예언대로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 또한 이방 나라처럼 철저하게 무너지고 사라져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왜 자신들을 이렇게 대하시는가를 알아가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멸망하여 사라지는 이방 나라를 보면서 자신들 역시 동일한 죄 가운데 있는데 왜 자신들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하나님에게서 찾게 하시고 그 근거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을 알게 됨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으로 살았습니다’라는 고백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으로 살았습니다’는 고백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온 마음이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으로 채워지고 감사함과 감격으로 채워짐으로 가능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의 마음만으로 가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절감할 때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고 말합니다.

 

 

모압은 역사의 초기부터 걱정 없이 안전하게 지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모압을 아직 건져 내지 않은 상태의 포도주에 비유하면서 적군의 포로가 된 경험이 없이 평안의 상태로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런 태평성대를 누려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압도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내서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순다고 하십니다. 결국 모압이 역사 초기부터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해도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태평성대를 누린다고 해도 죄 있는 존재이고 그 운명은 심판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면 모압은 자신들의 업적과 보물을 의뢰했습니다. 자신들의 업적과 보물을 자기 존재 근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의뢰하고 있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처럼 보여서 자기 업적과 보물에 붙들려 살지만 심판 앞에서는 지푸라기와 같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이 돈 덕분이고 여러분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피의 은혜가 우리를 존재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방 나라의 멸망 예언을 보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심판 예언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과 똑같이 심판 받아야 할 내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 은혜 때문임을 깨닫고 그 은혜를 높이고 감사해야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0 예레미야 (108강) 마지막 장의 의미 신윤식 2014.02.02 3375
109 예레미야 (107강) 던져진 책 신윤식 2014.01.26 3144
108 예레미야 (106강) 버리지 않음 신윤식 2014.01.19 3078
107 예레미야 (105강) 여호와의 계획 신윤식 2014.01.12 3181
106 예레미야 (104강) 다른 운명 신윤식 2014.01.05 3080
105 예레미야 (103강) 각 나라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9 3410
» 예레미야 (102강) 모압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22 3156
103 예레미야 (101강) 블레셋의 멸망 예언 신윤식 2013.12.15 3194
102 예레미야 (100강) 애굽 멸망에 대한 예언 신윤식 2013.12.03 4228
101 예레미야 (99강) 하나님의 큰 일 신윤식 2013.11.24 3234
100 예레미야 (98강) 신앙과 종교 신윤식 2013.11.10 3179
99 예레미야 (97강) 계속되는 말씀 신윤식 2013.11.03 3109
98 예레미야 (96강) 말씀보다 애굽 신윤식 2013.10.27 3065
97 예레미야 (95강) 애굽으로 가지 말라 신윤식 2013.10.20 3174
96 예레미야 (93강) 좋든지 좋지 않든지 신윤식 2013.10.06 21508
95 예레미야 (93강) 그다랴 암살 신윤식 2013.09.29 3211
94 예레미야 (92강) 총독 그다랴 신윤식 2013.09.22 5466
93 예레미야 (91강)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윤식 2013.09.15 3176
92 예레미야 (90강) 멸망과 구원 신윤식 2013.09.08 3195
91 예레미야 (89강) 에벳멜렉 신윤식 2013.09.01 31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