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12.29 10:18

(103강) 각 나라의 멸망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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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9:1-6http://onlycross.net/videos/jer/jer-49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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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이방 나라의 멸망이 유다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유다를 향해서 그 같은 멸망 예언을 하시는 것일까요? 49장에서는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 하솔, 엘람 등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이방 나라의 멸망에 대해 예언합니다.

 

 

사실 유다 입장에서 자기들 주변에 존재하면서 귀찮게 했던 이방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보다는 잘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가 멸망하면 그 땅이 손쉽게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유다 또한 하나님의 멸망 선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멸망의 대상인 이방 나라에 보내시지 않고 유다에게 보내신 것은 유다로 하여금 이방 나라를 바르게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이방 나라가 멸망의 선고를 받긴 했지만 말씀이 성취되기 전의 이방 나라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선악과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에서 보게 되면 모든 이방 나라는 현재의 모습과 상관없이 생명에서 멀어진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확정되어진 이방 나라의 운명이며 또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눈에 좋게 보인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은 세상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고 걸러낼 수 있는 기능이 이미 상실되었습니다. 본성 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좋게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도 좋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뿐입니다.

 

 

4절에 보면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과 그 주변의 땅은 물이 귀합니다. 따라서 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풍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한 가치가 있고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골짜기가 스스로 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물을 흐르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이 흐르고 마르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흐르는 골짜기가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랑한다는 것은 물을 흐르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잊고 다만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즉 헛된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의뢰하는 것 역시 동일합니다. 세상은 재물을 힘으로 여기고 의지합니다. 재물을 자신의 안전으로 생각하지만 그 재물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는 헛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실체임을 잊는다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자체를 무시하거나 믿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심판이라는 틀에서 바라본다면 중요한 것은 심판에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며 그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중요한 것은 흐르는 골짜기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이방 나라의 멸망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말씀을 제대로 들었다면 이방 나라가 자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기뻐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풍요를 누리는 이방 나라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자신들을 이방나라와 같은 풍요로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멸망의 대상인 이방 나라를 세워서 유다를 무너지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유다의 기대도 무너뜨려 버리십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신 후에 다시 돌아오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합니다. 이방의 멸망 이유는 교만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끌어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에 선언된 종말의 형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백성에게 하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심판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재물과 힘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부어주시는 것이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헛된 것으로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헛되다고 한 것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만 염두에 두어도 세상이 말하는 하나님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21절을 보면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고 말합니다.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 데만 주민에 대해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 그 모두는 심판입니다. 세상에 대한 의도와 결심 역시 동일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운명을 안다고 하면서 이방인과 동일하게 먹고 사는 문제에 신앙을 이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에 정해진 운명에서 건짐 받는 것에 뜻을 두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재미있다 재미없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결심이 실행될 때 나를 구원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힘을 붙드는 것입니다.

 

 

멸망이 선포된 이방인이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똑같이 멸망을 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양의 피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능력이 되기에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멸망의 세상에서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사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주어졌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복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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