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4.01.05 10:04

(104강) 다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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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50:11-20http://onlycross.net/videos/jer/jer-50112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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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 나의 소유를 노략하는 자여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타작하는 송아지 같이 발굽을 구르며 군마 같이 우는도다

12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13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주민이 없어 완전히 황무지가 될 것이라 바벨론을 지나가는 자마다 그 모든 재난에 놀라며 탄식하리로다

14 바벨론을 둘러 대열을 벌이고 활을 당기는 모든 자여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라 그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15 그 주위에서 고함을 지르리로다 그가 항복하였고 그 요새는 무너졌고 그 성벽은 허물어졌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내리시는 보복이라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는도다

16 파종하는 자와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를 바벨론에서 끊어 버리라 사람들이 그 압박하는 칼을 두려워하여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고향으로 도망하리라

17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뼈를 꺾도다

18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19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설교>

 

50장과 51장에서는 바벨론에 대한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가장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바벨론이 무너진다는 것은 모든 나라의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무너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벨론의 사고방식 그대로 존재하는 현재의 모든 나라도 무너진다는 것을 선포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말씀을 기준하여 살아가는 신자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기준하여 세상을 본다면 세상에는 희망 둘 나라가 없습니다. 모든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 질 것이라면 지금 현재 문명이 발달하고 풍족하게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있는 우리에게 성경은 우리가 몸담고 사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무너지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나라에 마음을 두는 것이 옳겠습니까? 당연히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산다면 그것은 영원한 나라를 믿지 않는 것이고, 보이는 것을 믿고 의지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나라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힘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너진다는 예언과는 다른 예언을 받은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앗수르 왕과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먹이고 꺾일 것을 말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무너지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19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더 놀라운 말씀은 20절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는 내용입니다.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포로 생활을 한 유다가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만 섬기며 죄에서 떠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긴 자를 용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로 인해 죄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다시는 죄로 인한 심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6:28절에서는 다른 나라는 다 멸할지라도 유다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유다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고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죄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은 유다가 이방 나라처럼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유다가 이방 나라와는 달리 죄를 범하지 않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죄 문제에서는 유다와 이방 나라가 동일합니다. 유다도 이방 나라처럼 멸망을 받고 사라져야 합니다.

 

 

이처럼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유다를 죄 없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용서 때문입니다.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용서가 그들의 죄를 완벽하게 덮으심으로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 안과 용서 밖에 있는 나라의 운명입니다. 유다가 이처럼 용서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을 붙들어서 하나님의 용서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복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큰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유다는 포로가 되어 고통 속에 삽니다. 하지만 운명은 바벨론은 무너져 사라질 것이고 유다는 죄를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언약과 함께 심판이 없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속한 것이 옳으냐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은 언약의 나라보다는 바벨론으로 향하기 십상입니다. 지금 현재의 부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죄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알지 못한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용서의 세계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일하실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나의 일에 관심을 두게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다만 지금 일하고 돈 벌고 잘 머고 잘 사는 문제만을 현실로 바라볼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도 자기 현실에 도움을 주기위해 일하는 분으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와 인자와 자비에 대해서도 마음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세계는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죄 없다는 선언은 용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죄 없다는 선언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는 심판의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말씀 안에서 심판의 현장을 미리 바라봄으로 죄 없다는 선언의 놀라움을 경험하면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너질 바벨론 안에서는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잘 산다고 해도 잠시 한때의 즐거움일 뿐이고 못산다고 해도 역시 잠시 한 때 불편일 뿐입니다. 세상을 이렇게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래야 현재의 삶에 대해 낙심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예수님에게만 마음 두기를 힘쓰게 될 것입니다.

 

 

롬 4:6-8절에 보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 받는 것은 일한 것이 없이 받아 누리는 거저주신 은총입니다. 이 은총의 세계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에 드러나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 안에서 주어진 용서의 은총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 안에 있는 신자를 복 있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존재합니다. 무너질 곳이기 때문에 늘 빠져나와야 할 곳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힘써야 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 세상의 결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속에 있는 우리를 불러서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죄 없다고 하신 그 은총이 참으로 크고 귀하다는 것을 세상의 심판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선물로 다가올 때 신자는 거저 주신 은총으로 감사하고 배부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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