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4.01.19 10:20

(106강) 버리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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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51:1-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51011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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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

2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의 땅을 비게 하리니 재난의 날에 그를 에워싸고 치리로다

3 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옷을 입고 일어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의 활을 당길 것이라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켜라

4 무리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요 관통상을 당한 자가 거리에 있으리라

5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 받은 홀아비는 아니니라

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8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말미암아 울라 그 상처를 위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9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10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설교>

 

이방나라도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나라는 멸망으로 끝납니다. 멸망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일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에게 멸망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50:4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뜻 안에서 무너지게 하신 것입니다.

 

 

바벨론 멸망은 유다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다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바사를 일으켜서 바벨론을 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6절에서 여호와의 보복의 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위해 바벨론에게 보복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은 ‘왜 이렇게 번거롭게 일하시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포로가 된 유다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또 유다를 무너뜨리고 핍박했던 바벨론에게 보복을 하시겠다면 유다는 왜 무너지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세워서 유다를 무너뜨리신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를 핍박했다는 이유로 보복을 하시는 것입니까? 바벨론이 하나님께 특별한 계시를 받고 유다를 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복욕으로 유다를 무너뜨린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신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를 무너뜨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도구로 바벨론을 이용하셨다고 해도 바벨론을 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멸망도 다른 이방 나라와 동일하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당연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무너지게 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바른 앎이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유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유다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그들의 복된 삶을 위해 택하신 것이라면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택함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 됩니다. 물론 유다의 죄로 인한 심판이라는 말도 가능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유다의 죄가 해결된 후의 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에 대한 유다의 회개나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50:20절에서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다의 죄가 없기 때문에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긴 자를 용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용서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용서 하신 분의 은혜와 긍휼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용서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용서의 은혜는 죄가 드러날수록 클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를 포로 되게 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를 용서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멸망을 안긴 것이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용서의 은혜에 있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곧 유다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임을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받은 홀아비는 아니니라”

 

 

유다와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죄과가 땅에 가득합니다. 여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 가운데 있습니다.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죄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과 다른 것은 유다는 여호와께 버림받은 홀아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를 버림받은 홀아비가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은 비록 현재는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무너지고 포로가 된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진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홀아비로 존재하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무너진 모든 것을 세우는 일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을 바라봐야 하고 힘이 없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홀로 길을 가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버림받은 홀아비가 아니라는 것은 여전히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시고 나의 일을 도와주시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의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유다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뜻하신 대로 이끌어 가심을 말합니다. 이것이 유다에게는 희망이고 힘이고 위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 받음의 결국은 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선을 이루시기 위해 신실하게 일하시고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붙들어 가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다가 멸망을 겪기 전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유다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 간주했을 뿐 자신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의도나 함께 하심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던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우상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이방 나라에 비해 힘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용서로 인해 죄 없는 자로 간주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방 나라가 누리는 부가 영원한 것이 아니며 그 또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임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방 나라의 멸망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방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그들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허용하고 있는 결과임을 멸망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유다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유다를 홀아비와 같이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들과 함께 하시며, 모든 고통은 자신들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는 백성으로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과 역시 땅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가득한 죄를 보지 않으시고 홀아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며 하나님이 택하신 의도대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알게 하시고 찬송케 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는 어떤 삶에서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백성으로 새롭게 세워 가십니다. 이러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징계도 하시고 어려움으로 밀어 넣기도 하십니다. 이 분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10절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다가 시온에서 선포해야 할 일은 여호와의 일입니다. 우리 역시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나 같은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이 일을 행하는 신자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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