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014.02.23 10:14

(3강) 원수 같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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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2:1-10http://onlycross.net/videos/lam/lam-02011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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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4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설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관리에 의해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길로 인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합니다. 이것은 멸망 또한 이스라엘을 관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임을 의미합니다.

 

 

대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늘 순탄한 길로 인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생각지 못한 힘든 상황이 주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혼란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에 대한 인간의 상식의 틀로 제멋대로 상상하는 것일 뿐입니다. ‘신은 이래야 한다’‘신은 이럴 것이다’는 상식을 앞세우기 때문에 주어진 현실에서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강해하면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멸망이라는 현실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사랑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에게 그런 시각이 있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고 말합니다.

 

 

유다를 딸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자식으로 여기는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다에게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로 표현하는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다고 합니다. 신에 대한 우리의 상식 밖의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딸로 여기시면서 왜 원수 같이 행하시고 근심과 애통을 더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있는 근심과 애통도 거두어 주시는 분인데 오히려 근심과 애통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붙들고 계십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마음 두기를 싫어하는 백성의 마음을 기어코 하나님께로 돌려놓기 위해 간섭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원수 같이 행하셔서 그들을 삼키시고 딸로 여기시는 유다에게 근심과 애통을 더하시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원수 같이 행하시는 것도 사랑이며 근심과 애통을 더하시는 것 역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버림받아 마땅한 자기 존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백성 된 자격을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에서 확인합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신자 됨을 주일 성수와 십일조, 봉사 등 교회 생활로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있는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백성 된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끝까지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해 붙드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작 세상에서의 풍요를 근거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6절을 보면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 같이 헐어 버리시고 그의 절기를 폐하셨다고 합니다. 시온에서의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다고 합니다. 초막은 하나님이 명하여 세운 것이고 왕과 제사장 역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절기와 안식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잊게 하시고 폐하신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근본으로 여겼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신다고 합니다. 제단과 성소는 초막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따라서 제단과 성소 역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신앙의 근간입니다. 제단과 성소가 없이는 신앙이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단을 버리시고 성소를 미워하신다는 것은 제단과 성소에서 행해진 이스라엘의 신앙 전부를 부인하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신앙으로 여기며 행했던 그 어떤 것도 그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1장에서 유다의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고 하나님께 반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애통해 하며 애가를 부릅니다. 이것은 멸망 속에 있는 유다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즉 유다가 멸망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자기의 죄였고 그 죄로 인한 애통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제단과 성전에서의 제사, 절기와 안식일 등을 지키는 것이 그들을 하나님 백성 되게 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백성 됨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이방인처럼 풍요로운 삶이 없다고 해도 풍요를 위해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수 같이 되신 것은 이스라엘 또한 이방 민족과 동일하게 저주를 받을 자에 지나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된 것이 곧 이스라엘을 이방인과 다르게 여기는 것임을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래부터 이방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원수 같이 되시고 이스라엘을 삼키신 것은 죄에 대해 보복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을 낮추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간 유리하게 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약속의 땅을 가까이 두고 40년간 유리하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기 위해서입니다.

 

 

40년의 세월을 유리하게 하신 것은 어찌 보면 원수 같이 행하신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그들을 낮추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들어서자 원망과 불평을 일삼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보존되고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세월인 것입니다. 이것이 낮아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되심을 생각하면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시고 근심과 애통을 더하시는 것도 유다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특별히 다루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입니다. 신자의 특별함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땅의 것을 누림으로 증거되지 않습니다. 신자의 특별함은 하나님에 의해 신자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신자라는 존재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신자를 내어 버려두시는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특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되었다는 것이 이미 이방인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를 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힘을 의지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끄시기 위해 원수 같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기 신앙 행위를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개입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화해된 것은 예수님이 화목 제물 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모든 행위는 내려놓은 채 예수님의 희생만 높여야 합니다. 어떤 행위가 있다고 해도 이것을 잊는다면 그는 신자 됨에서 멀어진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같은 자가 어떻게 신자 되었는가에 마음을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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