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7.01.14 15:17

(111강) 거룩한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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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5:1-8http://onlycross.net/videos/eze/eze-45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2.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

3.이 측량한 가운데에서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고 그 안에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4.그 곳은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이니 그들이 집을 지을 땅이며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라

5.또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거주지를 삼아 마을 스물을 세우게 하고

6.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는 오천 척을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7.드린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 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쪽으로 향하여 서쪽 국경까지와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국경까지니 그 길이가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8.이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줄지니라

 

<설교>

기독교인이 성경을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자부하는 내가 아니라 언약의 성취를 위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시는 모든 일도 구원의 대상인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의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말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을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구원의 대상인 신자에게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관심이 예수님께 있다면 예수님을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게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택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택한 백성에게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중심적 생각일 뿐입니다.

 

 

롬 8:14-1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아들 되게 하신 자들이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요? 자기 이름일까요?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된 자들은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영광이 주로 말미암았음을 알기에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자신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그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존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된 것을 영광된 것으로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으로 그리스도가 영광 받게 하시는 것이 이 땅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찾는 그리스도인의 관심이 누구에게로 향하는 것이 옳은가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예수께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예수님께 관심을 두면 좋은 신앙으로 인정받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자기를 향한 관심과 사랑인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관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데 자신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이신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제사와 안식일과 할례 등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했던 모든 신앙 행위들이 헛되고 무익하며 공허한 것이었음이 성전의 무너짐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지으신 참된 성전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백성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고 말합니다.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는 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을 기업으로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을 민 34: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업으로 받을 땅을 제비를 뽑게 해서 미리 분배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기 위해 힘쓰고 노력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진 기업임을 의미합니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 또한 이스라엘 각 지파의 희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받은 땅의 소유자는 누구일까요? 레 25:23절의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는 내용처럼 땅의 소유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땅의 소유자가 하나님이시라면 그 땅에 들어와 있는 이스라엘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레 25:55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은 이스라엘이 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자신들이 농사짓고 수확하며 살아가는 땅이기에 자신들 소유의 땅으로 여깁니다.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땅을 가진 주인으로 행세하며 땅이 없어 종 된 자들을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대접하지 않습니다.

 

 

레 25:39-42절에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몸이 팔린다 해도 종으로 부리지 말라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년이 되면 토지와 종,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나님이시고 종의 주인 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자신이라 생각했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힘 있는 자로 존재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이 성전에서 행했던 제사와 제물에도 담겨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예 성전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서 실시되었던 기업 분배를 또 다시 언급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돌아갔을 때 본문의 말씀처럼 제비뽑기 방식으로 다시 땅을 분배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을 보면 실제로 땅을 분배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쫓겨난 후 다시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구역은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고 너비는 만 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이 있는데 그 길이가 오백 척이고 너비가 오백 척으로 네모가 반듯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성소가 있는 그곳을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구별합니다.

 

 

또 5절에 보면 “또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거주지를 삼아 마을 스물을 세우게 하고”라고 말하고 6절에서는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는 오천 척을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좌우편의 땅을 왕에게 돌리라고 말합니다.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이것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예물로 받으시는 것은 거룩한 땅인데, 우리가 한 구역을 정해서 그 땅을 거룩한 땅이 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땅도 우리 힘으로 거룩한 땅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을 드릴 수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손으로 건축한 성전에서 얼마든지 자기의 정성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 된 자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에는 성전과 제사장과 율법이 있는 자신들이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한 구역의 중심에 성소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성소를 두시고 성소에 속한 땅을 거룩하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은 인간의 정성, 열심과 무관하게 거룩한 성소에 속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1절에서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는 것도 성소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자리한 그곳이 거룩한 구역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자리한 성소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소가 있다면 우리는 성소에 속한 것으로 이미 거룩한 구역으로 구별되어 있기에 스스로 거룩해지려고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히 9:11-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로 다가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십자가를 믿는 것은 거룩한 성소에 속한 자로 하나님의 거룩한 구역으로 구별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속죄가 우리 안에 무한한 은혜로 자리하기에 주를 사랑하게 되며 세상이 아닌 주가 이끄시는 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별하라고 하신 거룩한 구역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본래 거룩한 구역에 속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로 인해 죄가 가려지고 죄 없는 자로 거룩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의 은혜 결과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구역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만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한 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가 예수님의 은혜를 품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세계를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위해서 본인이 힘을 쓰고 열심을 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행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 없게 되면 속의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허전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또 다시 열심을 내어 행할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만으로는 속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고 재미와 함께 보람을 제공해주는 다른 것을 찾아 신앙의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을 보면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속히 허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여러분의 앞에는 모든 것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주어진 자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주어진 모든 것으로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성소에서 거룩한 제물의 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고, 그 성소가 우리에게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로 말미암아 거룩한 구역으로 구별되어 존재합니다. 이것이 피의 용서로 이루어진 참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이 또 다시 예전의 성전 신앙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늬만 이스라엘일 뿐 이스라엘 아닌 것이 드러날 뿐입니다. 참된 이스라엘은 영원한 속죄를 이룬 용서의 은혜를 높이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다운 선한 행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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