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7.01.28 16:01

(113강) 명절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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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5:21-25http://onlycross.net/videos/eze/eze-452125.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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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유월절을 칠 일 동안 명절로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22.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3.또 명절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준비하되 곧 이레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24.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며

25.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 일 동안 명절을 지켜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

 

 

<설교>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예배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아예 믿음이 없거나 사이비로 치부되는 것이 현대 기독교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신앙하는 신자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배라는 행위가 있기에 신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배하면서 하나님만 생각합니까? 인간의 특기는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겨왔던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제사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잊어버리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제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제사하는 자신에게 생각이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제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을 생각하고 반면에 하나님의 규례대로 열심히 제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복을 주실 것을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관심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로 집중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자신을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잊은 것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잘 신앙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을 잊은 것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로 실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은 수면 외의 시간, 즉 깨어 있는 시간에 하나님만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생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깨어 있는 동안에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비록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하나님을 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설교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잊은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성경에 등장한 최초의 제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제사하는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이 제물을 바치고 제사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잊었음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제사하면서 ‘하나님 이 제물과 제사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가인이 하나님을 잊은 것으로 여기시고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 11:4절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즉 가인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은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리되 제물을 바치는 자신을 생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열심히 일해서 거둔 곡식을 제물로 바칩니다.’는 생각과 함께 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사하는 자신을 보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잊은 믿음 없음으로 간주되어 가인과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하나님은 잊은 채 열심히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자신들에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하는 자신들을 제사하지 않는 이방인과는 다른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심판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했다면 당연히 심판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전이 무너지고 왕과 귀족과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상황에 처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처럼 이스라엘과 그들이 바친 모든 제물과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열심히 행하고 지키고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면 결국 그들은 허망한 일에 몰두한 결과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제물을 바치고 제사하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또 다시 절기를 지키고 제사하고 예물을 바치는 규례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성전 중심의 신앙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증거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또 다시 옛 성전에서 행했던 규례를 언급하시는 것일까요?

 

 

13-15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드릴 예물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명절에 속죄를 위한 제사 드리는 일을 이스라엘 군주의 본분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18-25절에서도 이스라엘이 행할 제사와 지켜야 할 명절에 대해 말씀하는데 이 모든 내용들을 이미 이스라엘이 지켜 행해야 할 규례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가령 21절을 보면 “첫째 달 열 나흗날에는 유월절을 칠 일 동안 명절로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레 23:5절에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유월절 규례로 세워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 일 동안 명절을 지켜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는 초막절 역시 레 23:34절에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절기로 세워진 것입니다.

 

 

레위기에 등장하는 절기와 제물과 제사 규례는 이스라엘이 아직 광야에 있을 때 약속의 땅에 들어가 지켜 행해야 할 규례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규례를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절기와 제사와 제물에 대한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일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그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였다면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쨌든 하나님이 지키라고 한 절기와 제사에 성실히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절기와 제사와 제물에 대한 규례를 표면적으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이 처한 당시의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알다시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고통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절기와 제사와 제물에 대한 규례를 지킬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예물에 대한 규례를 보면 13절에서 “너희가 마땅히 드릴 예물은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리며”라고 말씀합니다. 수확한 밀과 보리 중 60분의 1을 바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11절의 “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하게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하고 에바도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할 것이며”라는 말씀을 보면 한 호멜의 십분의 일을 한 밧, 한 에바라고 합니다. 따라서 한 호멜의 육분의 일 에바면 한 호멜의 육십분의 일을 예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물의 양이 아니라 예물을 바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한 호멜의 육십분의 일이 많든 적든 이스라엘은 땅이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땅을 잃어버리고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온 상황이기 때문에 자기 땅이 없으며 곡식을 뿌리고 수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15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윤택한 초장의 가축 떼 이백 마리에서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을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로 삼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윤택한 초장이 없습니다. 가축 떼 이백 마리에서 어린 양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의 이스라엘은 어린 양 한 마리도 예물로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전도 성소도 무너지고 없는 상태에서 희생제물의 피로 성소를 정결하게 하거나 성전을 속죄할 수도 없습니다. 유월절을 명절로 지키라고 하지만 “또 명절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준비하되 곧 이레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라는 명절의 규례를 지킬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명절과 예물과 제사는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도무지 실천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 규례들은 바벨론에서는 할 수 없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실행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다시 성전을 세운 후에야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절 지킴과 예물 드림과 제사가 실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단지 중지된 제사와 절기 등이 규례대로 실행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셨고 그들이 절기를 지키는 것 또한 절기를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성전 중심의 신앙이 다시 회복된다면 또 다시 실패만 반복될 뿐이기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의 규례는 포로로 생활하는 바벨론에서는 지킬 수 없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다시 실행하라는 의도로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본문의 규례들이 주어진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생활할 때 본문과 같은 명절과 제사와 제물에 대한 규례를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은 그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명절을 지키고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의로 여기게 됩니다. 즉 절기를 지킬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절기를 지키는 자신을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없고 예배를 드린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간주하는 현대의 기독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규례를 이스라엘이 모른 바가 아닙니다. 절기나 제사 규례가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규례가 선지자의 입에서 다시 반복될 때 반드시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지키고 행해왔던 모든 것이 그들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25절에서 말하는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 일 동안 지키는 명절은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초막절을 말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생활하던 때를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 초막절입니다. 곡식을 추수할 수 없는 초막 생활하던 때를 잊지 말고 약소의 땅에서 누리는 추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감사하는 것이 초막절이라는 명절에 담긴 의미입니다.

 

 

따라서 명절을 지키는 참된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이 세우신 기간 동안 제물을 바치고 제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열심히 수고하고 일하며 지키는 자신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잊은 것이고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잊은 채 지키고 행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바벨론에 있던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가서 성전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고 명절을 지키게 된다면 그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바벨론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실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게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은혜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감사와 찬송만 있는 곳이고 그것을 교회로 모여서 미리 누리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힘과 의지로 예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언제나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며 명절을 지키는 의미가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든 복음을 알든 무엇을 행하든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매일이 은혜의 날이며 기쁨과 감사의 명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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