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7.04.08 17:05

(123강) 거룩한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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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8:8-12http://onlycross.net/videos/eze/eze-48081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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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9.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10.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11.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12.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설교>

성경에서 사탄이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죄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 보면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가령 에덴동산에 등장한 사탄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대개는 이 말을 사탄이 단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하려는 유혹으로만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 말에서 죄의 속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간파할 수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탄의 말에는 선악과를 먹는 행동에 의해서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는 솔깃한 유혹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유혹은 갈등을 유발합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는데 만약 먹지 않으면 하나님 같이 되는 기회를 놓쳐 버릴 수 있다는 갈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너의 행동으로 인해서 너의 가치가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신앙 세계로 연결되어서 ‘나의 행동 여부에 따라서 복과 저주가 결정 된다’는 사고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욥기서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에 대해서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는 말로 욥에 대한 자기 생각을 드러냅니다. 사탄의 생각은 하나님이 욥이 하는 일을 복되게 하셔서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즉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까닭이 욥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드러난 사탄의 속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죄는 원인을, 까닭을 자기에게 두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복의 원인도 구원의 원인도 고통의 원인도 모두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없는 편안한 형편에서는 ‘신앙생활을 잘해서’라고 생각하고, 고통이 있으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원인도 하나님께 있고, 복을 누리는 원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면 죄의 원인도 고통의 원인도 하나님께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습니까? 모든 원인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물론 죄의 조성자가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라 사탄이 활동하도록 허용하심으로 세상이 죄의 권세 이래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 까닭을 성경은 자기 백성을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되는 원인도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죄를 범하였기에 그에 대한 합당한 징벌로 고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면서 그 뜻에 조금씩 눈이 열리게 되고 결국 고통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게 되는 기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일에 대한 결과도 우리가 원인이 되어서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방해합니다. 항상 우리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도록 유혹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내가 잘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데 잘지 못해서 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자기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고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에스겔 48장은 땅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돌아갈 거룩한 땅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땅 중앙에는 여호와의 성소가 있습니다.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를 두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분배 받고 살아가게 된 원인이 이스라엘이 아닌 여호와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소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관리 아래 있는 그 이유가 자신들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신들의 존재에서 모든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물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데 8절의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라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드릴 예물이 땅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9절에서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예물로 드릴 땅의 규모 또한 하나님에 의해서 고정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12절에서 “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는 말씀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거룩한 예물인가에 대해서도 이미 확정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예물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예배를 드릴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정성이 담긴 예물을 바쳐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예배가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물 바치는 것이 아까워 소홀히 하게 되면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인과 결과를 자신에게 두는 죄의 속성이며 사탄의 유혹입니다. 결론은 예물에 대한 이해가 지극히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가치 있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하늘의 가치관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하고 존귀하고 좋은 것들이 하늘의 가치관에 빗대어서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거룩한 예물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거룩한 예물을 바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예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물이라는 명목으로 바치는 것은 거의 재물, 즉 돈입니다. 돈을 거룩한 예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돈이 예물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거룩과 상관이 없는 존재입니다. 죄인인 인간에게서 거룩한 것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 거룩한 예물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현대 교회가 강조하는 예물은 예물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열심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드리자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자기에게 두기 때문임을 간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규정되고 고정되었으며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물은 우리가 정하고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파가 분배받은 몫에서 각기 얼마를 떼어서 예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 확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물은 이스라엘의 정성이나 열심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땅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 땅은 길이는 이만 오천 척, 너비는 만 척입니다. 길이는 동쪽에서 서쪽까지의 폭을 말합니다. 그리고 너비는 위의 북쪽에서 아래 남쪽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쉽게 가로와 세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거룩한 땅은 이 뿐이 아닙니다. 13절의 “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가 각기 만 척이라”는 내용을 보면 제사장에게 돌릴 거룩한 땅과 동일한 크기의 땅이 레위 사람의 몫으로 주어집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거룩한 땅은 이스라엘 지파가 분배 받은 땅으로부터 구분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받으실 거룩한 예물은 이스라엘 각 지파 내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예물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룩한 예물은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신 땅이고 그 땅은 고정되어있기에 거룩한 땅으로 가면 됩니다. 그 땅으로 간다면 하나님께 가장 거룩한 예물로 인정되는 예물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인 거룩한 땅에 서 예물로 참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물의 참된 의미이고 비밀입니다. 따라서 예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신 땅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속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물로 참여될 수 있는가?’입니다. 거룩한 땅은 인간이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거룩한 땅을 거룩한 곳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땅에 취해 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15절의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의 몫과 레위 사람의 몫은 거룩하게 구별된 땅입니다. 그 땅의 너비는 각각 만 척입니다. 그런데 15절에는 너비가 오천척인 속된 땅으로 구분된 땅이 있고 이 땅에 성읍을 세워 거주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합계는 길이도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읍의 기지는 속된 땅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속된 땅이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에 속한 것입니다. 속된 땅이 어떻게 해서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는 땅에 속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가 제사장 땅 중앙에 있는 여호와의 성소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소로 말미암아 속된 땅이 거룩한 땅에 속하여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속된 존재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거룩에 참여할 수도 속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거룩한 자가 된 것이고 거룩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드려질 예물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고 우리 손으로 들고 나오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거룩한 땅에 속하게 된 우리 자신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모든 내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음이 제사장 땅 중앙에 있는 여호와의 성소,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물의 예물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소의 의미, 그 존귀한 가치를 아는 자가 거룩한 땅에서 예물로 드려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피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그가 곧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만을 보시고 예물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속된 땅이 여호와의 성소로 인해 거룩한 땅에 속하게 되었지만 성소로부터 벗어나면 여전히 속된 땅일 뿐입니다. 그것처럼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존재로 여김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예물이 되는 것이지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진노의 자식일 뿐입니다.

 

 

신자는 속된 자가 거룩에 속하게 된 내막을 알았기 때문에 원인을 자신에게 두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인이 되어서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진노일 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모든 원인을 그리스도께 둡니다. 내가 잘해서 되는 일은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만 집중하고 그 일만을 자랑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행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규정하시고 확정하신 것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속된 땅에 있던 우리가 거룩한 땅에 속하게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원인은 없이 결과만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거 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증거 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모든 죄를 용서하는 거룩의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의 세계에 두심으로써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모든 혜택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에 마음을 두고 감사하는 것이 예물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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