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010.08.16 16:12

(4강) 그의 길로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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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4:1-5http://onlycross.net/videos/micah/micah-04010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설교>

 

인간이 생각하는 죄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가 다릅니다. 인간은 행위를 기준으로 죄를 판단하기 때문에 행위에 따라 죄의 경중에 차별이 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이 아닌 모든 인간은 악한 죄인이며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죄의 경중이 없습니다. 악한 행위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그 마지막은 심판일 뿐입니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선악과를 먹은 것을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큰 죄로 여기십니다. 혹 먹지 말라는 과일 하나 먹었다고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또 아무리 먹지 말라는 말씀을 어겼다고 해도 한번은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다운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살인과 같은 행위는 큰 죄로 인식을 하면서도 선악과를 먹은 것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죄를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시고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신 이스라엘의 죄는 지도자와 통치자를 중심으로 행해졌습니다. 지도자는 뇌물을 위해 재판을 했고, 제사장은 삯을 위해 교훈하며,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다는 듣기 좋은 말로 백성을 미혹하는 것이 그들의 죄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현실을 전혀 심각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향한 죄와 심판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에 분노하시고 심판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게 심판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때 심판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 가벼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단호하심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단호하심을 알 수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고 계산된 사랑이 교회를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가 택한 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간다고 해도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에서 오직 긍휼과 자비만을 봅니다. 죄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희생으로 자기 백성을 심판에서 건지시는 것은 세상 어떤 신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여호와만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란 이름에서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복과 성공입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갓바위에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이 잘되고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갓바위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그 길로 영원히 행하는 것은 다른 신을 부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복을 누린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래 너희는 세상의 복을 받고 잘 살아라 그래도 나는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며 영원히 그 길로 행하겠다’라고 외칠 수 있는 단호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가능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에서 세상의 신에게는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여호와에게서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존귀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를 여호와께 붙들어 놓는 힘이고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심판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심판이 당연함을 아는 사람에게만 큰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심판이 당연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자기희생으로 건지셨다는 것은 심판의 당연함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대할 뿐입니다.

 

 

1절을 보면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전의 의미를 모릅니다. 여호와의 전이 자신들에게 함께 하고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제사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백성들에게 돈을 받고 자기 배를 채우는데 바쁠 뿐입니다. 죄도 심판도 그들에게는 관심 밖의 얘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끝날이 이르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끝날이 되면 여호와의 전의 가치는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이미 여호와의 전의 존귀함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만인이 다른 신을 부른다고 해도 여호와의 이름만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홍수 심판이 이르기 전에는 노아의 방주가 세상이 가치 있는 것으로 높이는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홍수가 이르렀을 때는 오직 방주만이 생명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지금은 세상이 십자가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끝날이 되면 단 하나의 생명의 길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의 존귀함을 아는 신자는 영원토록 피를 믿는 믿음의 길로만 행하게 됩니다.

 

 

세상은 지금은 그 길을 거부하고 십자가 역시 멸시합니다. 십자가보다는 돈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끝날이 되면 십자가의 존귀함과 가치는 명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신자는 그것을 끝날에 가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끝날로 살면서 십자가가 생명이며 가장 존귀하다는 믿음으로 삽니다.

 

 

2절을 보면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이르면 하나님의 도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보게 하시고, 심판에 해당되는 존재임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율법을 만나고 말씀을 만남으로써 저주에 속한 자가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주에 속한 자임을 아는 신자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구원하는 용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존귀함을 보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십자가 앞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는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주에 속한 자에게는 넘치는 은혜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길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낸 후 하나님에 의해 돌아오게 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자신들이 영원히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멸망을 받고 영원히 고통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져야 할 당연한 결과인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자신들을 고통에서 건져 주셨음을 깨달으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그러한 긍휼과 자비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 멸망이라는 끝날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저주와 멸망이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당연한 결과인데,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건지셨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을 영원히 십자가의 길로 행하도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