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010.08.23 10:07

(5강)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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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4:6-8http://onlycross.net/videos/micah/micah-0406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설교>

철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분석을 하고 인간의 내적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본성과 양심, 죄와 선, 의식과 무의식 등 인간의 전부를 파헤쳐 그 결과물을 내어 놓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 생각의 산물일 뿐입니다.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인간을 사망에 처한 자로 규정을 하고 시작합니다. 어떤 노력으로도 개선될 수 없고, 스스로 선을 양산할 수 없는 존재로 말합니다. 이점을 도외시하고 인간을 얘기한다면 나오는 것은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비와 긍휼로 다가오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자비와 긍휼은 무의미합니다. 개선할 것을 명령하시고 개선한 자만 부르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선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자비와 긍휼로 다가오시는 것이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어둠에 비치는 한줄기 빛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기 존재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부터가 자비와 긍휼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자비와 긍휼을 거둔다면 그들 또한 이방인과 동일하게 멸망을 받아야 하는 악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잊었고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힘으로 여기며 그 힘으로 약자를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세상 것을 힘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을 선지자를 세워서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6,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망하고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고통을 당하는 때에 하나님이 남은 자를 부르시겠다는 말씀을 이루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이 남은 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는 자, 쫓겨난 자, 하나님이 환난 받게 한 자들입니다.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는 자가 의미하는 것은 비참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비참에 처한 자들을 부르셔서 백성이 되게 하시고,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자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망한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서 부르시고 돌아오게 하신다면 그들은 국가를 재건하는데 능력이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즉 기술자들이나 학자들을 골라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급하신 사람은 국가를 재건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국가적 의미의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실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무너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다시 세우고자 하신다면 아예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셨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신 것은, 지금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참된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특성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참된 이스라엘은 저는 자와 쫓겨난 자와 환난 받은 자들이 백성인 나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돌아오게 되는 남은 자는 자신이 저는 자, 즉 쓸모없는 장애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자일뿐임을 알고, 환난은 자신의 행함에 대한 당연한 보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자가 하나님이 모으시는 참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왜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불평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은혜를 요구할 그 어떤 권리도 자격도 없음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지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부터가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내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무엇도 누릴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셨다가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일에도, 돌아오는 것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망하는 것은 자신들이 당해야 할 당연한 보응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참된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님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의인은 자신의 의를 바라보고 자신에게서 모든 가능성을 찾지만 죄인은 자신의 죄를 바라보면서 모든 가능성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주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는 자신의 공로와 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공로만 있고 주님의 의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행위가 의가 되고, 자신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의의 열매를 받아 누릴 뿐임을 아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심으로써 저주에 처한 자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기뻐하고 찬송하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힘이기 때문에 모든 백성이 동일한 힘을 가진 자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약자와 강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8절을 보면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나라를 하나님이 돌아오게 하시는데 예전의 예루살렘의 나라가 아니라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은 자로 돌아오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백성인가? 는 오늘 본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자기 존재성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 ‘내가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신자 됨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멀쩡한 사람입니다. 생각도 육신도 모두 멀쩡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저주의 자식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은혜와 사랑으로 대하시겠다고 합니다. 모든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 은혜를 아십니까?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부르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에게로 마음이 향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죄인에게는 예수님의 덮어주시는 은혜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