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010.08.30 15:52

(6강) 하나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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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4:9-13http://onlycross.net/videos/micah/micah-04091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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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은 없습니다)


<본문>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

 

 

<설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인간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행보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은 인간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10절에 보면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고, 또 거기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결국 구원하실 것이라면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실 필요 없이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구원하시면 안되는 것입니까? 어쨌든 구원 하셨으니까 다른 것은 따질 필요 없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70년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이방 나라의 포로된 처지로 70년의 세월을 지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고통의 세월을 뜻합니다. 또한 바벨론에서 70년의 세월을 지냈다면 장성하여 끌려간 사람은 모두 바벨론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구원하실까요?

 

 

인간은 자기의 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은 당연히 자신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을 하셔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즉 편안한 구원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원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런 것이라면 애초 선악과의 등장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등장시켜서 인간을 죽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도,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가 있게 하시고, 사탄으로 인해 말씀을 어기게 하시고,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신 후에 예수님을 보내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그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줄 자는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왕도 없고 모사꾼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찾고 의지할 뿐은 하나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포로가 되기 전에는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만 잘하면 자신들은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도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다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아니라 종교를 유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서 왕과 모사를 없애시고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셔서 고통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단지 힘들게 해서 여호와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기도하게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동안 그들이 살아왔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결과였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아는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에 담긴 뜻입니다.

 

 

세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삽니다. 그래서 자연히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으로 높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상에 남기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자신을 살게 한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자로 고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을 하게 된 것은 죄 때문이고, 그 죄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대대로 있었습니다. 전에는 허물과 죄가 없이 신앙으로 잘 살았는데 미가 선지자 때 신앙이 무너지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죄가 있던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나중에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이스라엘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고통에서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그동안 살아온 것은 죄와 허물 밖에 없는 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과 자비로 덮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이스라엘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잘되는 것만 바랍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안 될 때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누릴 자기 인생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을 원하십니다.

 

 

11,12절을 보면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부인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신은 이방인의 시각에서는 믿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멸시하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마 자기 백성을 망하게 하고, 고통에 빠뜨려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이방인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한 자기 백성을 망하는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망하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망함을 통해서 ‘망하는 것이야 말로 죄와 허물로 가득한 자신들에게는 당영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심으로 인간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고 뜻이라면 세상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신자를 이상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신자라면 오히려 세상을 불쌍히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면서도 소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세상이야 말로 결국 영원한 심판으로 끝날 것인데,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신자는 고통과 실패에서 당혹스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라면 고통과 실패에서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기쁨과 감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복을 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기 위한 일을 들고 오십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고통이 될 수 있고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러한 고통과 어려움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의 구원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깨달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