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010.09.27 08:39

(10강)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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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6:9-16http://onlycross.net/videos/micah/micah-06091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13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14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설교>

이스라엘의 제사에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기름이 강물처럼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들의 정성과 열심을 도구로 하나님께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상의 정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방인의 풍습까지 본받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9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여호와를 기쁘게 하고 경배하는 지혜는 제물을 넘치도록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지혜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매가 예비되었는데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를 듣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매를 드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안다면, 하나님은 불의함이 없으시고 자신들에게 매를 드신 것도 정당하신 일임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매를 맞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저희들은 매를 맞아도 당연한 존재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자신의 악함을 알았다는 증거고, 자신들에게 매를 드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지혜가 됩니다.

 

 

때문에 지혜가 있는 신자는 매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물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또한 원하는 것을 신의 힘을 이용해서 얻으려고 자신의 정성이라며 많은 제물을 바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음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는 악한 행동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은 8절에 언급한 대로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바칠 것은, 인간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인간의 시각에서, 신앙이라고 이름하고 선한 것으로 이름하면서 부지런히 바친들 오히려 악을 쌓는 것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도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것으로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숫양도 기름도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현대 교회가 인간이 바치는 것을 신앙과 정성이라고 하면서 많이 바칠 것을 강조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성경도 아닙니다. 그냥 인간의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10-12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는 불의한 재물이 있었고, 저울을 속여서 불의한 이익을 얻는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면서 겸손히 정의를 좇아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따라 행했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물과 에바로 가득한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우리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불의한 재물을 좇고, 내게 이득이 되는 길만을 따라갑니다.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주관대로 나에게 좋은 대로 삽니다. 성경을 보고 기도한다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해도 항상 그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매를 드신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일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안다면 매를 드시는 하나님을 부당하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매를 드신 것이 마땅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반응하게 될 뿐입니다.

 

 

불의한 재물과 가증한 에바로 가득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데 그것을 12절부터 말합니다. 병들게 하고, 황폐하게 하시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황상 속이 비게 하실 것이고,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하고, 감람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먹으면 배부른 것이 정상인데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항상 속이 비어있는 것처럼 허기를 느낍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세상에 나가서 부지런히 일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배부른 적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많이 가지고 누린다고 해도 우리의 속은 항상 비어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이 없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욕망 가운데 내어 버려두심으로 우리를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며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은 추수입니다. 추수에 모든 희망을 걸고 추수하면 그것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원한 대로 추수를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이처럼 인생을 우리의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왜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라며 항변을 합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게 되면, 원한 대로 살 수 없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불의한 나의 뜻대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오히려 망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안되는 일에서 신자는 자기 백성에게 매를 드시면서 의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편히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힘들게 사는 것을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징계가 없는 것이 사생자라는 말씀을 근거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편히 사는 것이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고 내어 버려두신 결과라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편히 사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편안하고 힘든 것이 복과 징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신자에게는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는 반발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정당하신 일로 여기게 됩니다. 주가 행하신 모든 일이 당연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아는 지혜입니다. 때문에 지혜는 결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힘을 구하려고 제물을 바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지혜는 신령한 기도나 은사를 통해 장래 일을 예언하거나 현실의 여러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성공적일지 알아내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또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발견하는 시각도 아닙니다.

 

 

지혜는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 앞에서 높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죄로 볼 수 있는 신앙적 사고입니다. 그 지혜만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매를 드시는 것을 당연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매를 맞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있을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도 옳은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여러분께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신자의 길을 갈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