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2010.12.05 18:28

(2강) 옳으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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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1:12-17http://onlycross.net/videos/hab/hab-01121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15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17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설교>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으시고 철저히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시고, 요 5:29절에서도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실 만큼 선과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비춰지는 하나님은 마치 죄에 대해 방관하시고 용납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죄는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실감할 수 있는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이 악에게 삼킴을 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여러 가지 혼란을 겪게 됩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바로 그러한 혼란에서 하나님께 항변을 하듯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악에 대해 침묵하시고 잠잠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항변에 살아있는 의식이 뭔가 하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 마땅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누려야 할 이스라엘이 고통을 받고, 반면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선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같은 의식이 있습니다. 신자는 복을 누려야 하고 이방인은 고통을 받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이 같은 고통이 주어지는가?’라고 항변을 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복을 누리는 것이 마땅한 인간으로 보는 시각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마치 하나님의 부당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라는 외침을 보면 선지자는 유다를 사망에 이르지 않을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서 율법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망은 유다와 상관이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심판하기로 작정한 것은 이방인이고 따라서 그들이 사망에 이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생각대로라면 세상은 유다가 복을 받고 이방인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유다에게 함께 하신다는 증표라는 것이 선지자의 생각입니다.

 

 

우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와 신자 아닌 사람을 구분하시고 그에 따라 적절한 보응을 받으며 사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신자에게 있는 갈등입니다.

 

 

13절을 보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항변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지켜주시고 간섭하고 계시는 신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같은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시고 잠잠히 계시는 하나님을 실감할 뿐입니다.

 

 

1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마음대로 잡아가는 주인 없는 바다의 고기처럼 그냥 방치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억울한 일을 당하도록 내 버려두시는 하나님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유다는 바다의 고기처럼,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처럼 이방인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고통을 받고 있고, 이방인들은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데도 하나님은 잠잠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고기를 마음껏 잡게 해주는 그물에 분향을 합니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대해 당장 심판하시는 것이 옳을까요? 선지자는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잠하시는 하나님께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이방인에 대해 심판을 하신다면 유다는 어떻게 될까요? 선지자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다는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할 뿐, 이방인의 사고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자신들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자는 복을 누리고 이방인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신자는 영원한 복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이방인은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스스로 신자라 하는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가 과연 이방인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갑니까?

 

 

이방인은 그물에 제사하고 투망 앞에 분향 합니다. 그물과 투망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6절). 즉 자신의 소득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늘의 새도 하나님이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믿음이라면 자신의 모든 소득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그물이 있어서 소득이 풍성하게 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물은 단지 자신에게 소득을 얻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인 신자는 귀하게 여기고 섬길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고기를 잡게 해주는 것은 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물을 바라보면서 그물을 의지하는 우리 역시 이방인의 사고방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방인을 심판하신다면, 우리 또한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할 신자로 여깁니다. 때문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부당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우리 소견으로 판단하면서 부당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됨은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바로 진노의 자식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침묵하기도 하십니다. 침묵하시면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하심으로 내가 곧 멸망의 존재임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게서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악을 보면서 나같은 자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하나님은 잠잠하지도 침묵하고 계시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십자가로 향하도록 쉬지 않고 일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항상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택하지 않은 자는 그냥 내 버려두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살아계셨음을 온 우주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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