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2010.12.19 19:01

(4강) 화 있을진저

조회 수 46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합 2:5-20http://onlycross.net/videos/hab/hab-0205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6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7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12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3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15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6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받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17 이는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죽인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9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설교>

하나님은 세상에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이 있게 되면 심판으로 인해서 화를 입을 자들이 있게 되는데,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선지자에게 말씀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누가 화를 입을 자들일까요? 6절을 보면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세상 것을 모으기에 힘씁니다. 많이 모을수록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소유를 모으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소유 아닌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고, 그렇게 해서 소유를 늘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9절을 보면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성은 항상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피하기 위해 더욱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부당한 이익이라고 거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12절을 보면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성을 튼튼히 크게 건축하기 위해서 약자가 피를 흘리는 것도 불의를 행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누가 희생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자신의 집을 든든히 하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직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고 이러한 자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15절에는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웃을 부끄럽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웃에 대한 비방과 욕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웃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비방하고 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생명이 없는 것을 힘으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화 있을진저’라는 이 말이 선지자에게는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유다 또한 ‘화있을진저’에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제사하지 않고 제물을 바치지 않는 자는 화 있을진저’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할례를 행하지 않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하셨다면 유다는 이방 나라와 구별되면서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와 있을진저’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 앞에 서면 유다와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유다 역시 ‘화 있을진저’에 해당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도 욕심으로 살았고 자신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든든히 세우기 위해 약자의 피를 흘리고 불의도 마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산 것입니다.

 

 

그들이 잘한 것이 있다면 다만 율법에 따라 제사하고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오해한 것이 이것입니다. 1:12절에 보면 선지자는 자신들을 사망에 이르지 않을 자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심판을 위해 예비된 자들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겪는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의 생각을 뒤엎습니다.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결국 누가 심판에 해당되는가를 묻는다면 모든 인간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합니다. 누가 의인일까요? 분명한 것은 의인은 실천과 행함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실천과 행함을 기준으로 의인을 구분한다면 그 누구도 의인으로 불려질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욕망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길 실천과 행함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자신의 존재성을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되는 악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악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가 바로 의인으로 여김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를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은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의로움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믿는 믿음으로 이 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에게는 믿음이 전부고 오직 믿음으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 안에서는 권력도 소유도 실천도 행함도 무용지물입니다. 권력이나 소유, 우리의 얄팍한 실천이나 행함을 가지고는 밀려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구속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감사하면서 그 사랑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아들을 믿는 믿음이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절실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믿음위에 세우기 위해 간섭하십니다.

 

 

유다로 하여금 고통을 겪게 하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불평과 원망이 있게 하시고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3장을 보면 하박국의 기도가 진노 중에서 긍휼을 구하는 것으로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유다의 고통을 부당한 것으로 여겼는데, 유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되는 존재임을 알게 되자 진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긍휼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을 구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부터 물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복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당하게 복을 요구하십시오. 복받을 자격이 있는 자에게 복을 주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가 과연 복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진노 밖에 없습니다. 심판이 당연합니다. 그런 우리를 진노에서 건지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런 신자에게 믿음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재물도 권력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가 심판에 속한 우리를 건져내는 능력임을 믿기에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신자는 오직 이 믿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 믿음이 평안이고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그리고 무한하고 넘치는 복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 하박국 (5강) 주의 일과 부흥 신윤식 2010.12.26 4479
» 하박국 (4강) 화 있을진저 신윤식 2010.12.19 4615
3 하박국 (3강) 믿음으로 살리라 신윤식 2010.12.12 4419
2 하박국 (2강) 옳으니이까 신윤식 2010.12.05 4235
1 하박국 (1강) 하박국의 호소 신윤식 2010.11.28 4480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