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2011.02.27 17:16

(1강)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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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1:1-6http://onlycross.net/videos/zec/zec-01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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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설교>

스가랴는 학개와 동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스가랴 선지자가 외치는 말도 바벨론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축 하는 유다 백성을 향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미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축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선지자는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절)고 외치고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났음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이미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는 유다 백성은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란 뜻이 되는데, 이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백성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외친다면 그들의 상황과 형편을 기준으로 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있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그들의 상황이나 형편과 상관없이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로 여긴다는 뜻이 됩니다. 즉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성전을 건축한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로 보십니까 아니면 돌아온 자로 보십니까? 아마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로 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교회를 다니고 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면 교회를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고 돌아오는 것은 교회를 떠나고 다니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다니고 사람들이 말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4절을 보면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면서 조상들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 돌아오라는 하나님이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한 조상의 악한 길, 악한 행위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것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길에서 벗어나지를 낳았고, 보이는 성전과 성전에서 제사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신앙으로 붙드는 삶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이 비록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조상과 다르지 않다면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즉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의 실상이었기 때문에 ‘내게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곧 여호와에게 돌아온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자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신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자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같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이 원하는 자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자신이 물려받을 것을 받아서 떠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돼지가 먹는 것으로 배고픔을 달래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떠난 것이 곧 인생의 실패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그 심정은 아들이 아니라 일꾼의 하나로 여겨도 좋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만약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돈을 받아서 실패를 만회하고 기어코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의도로 돌아간 것이라면 그것은 아버지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힘을 바라보고 그것을 신뢰하는 것일 뿐입니다. 몸은 아버지에게로 향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버지에게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의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아버지에게서 떠난 것이 곧 실패라는 것을 깨닫고 품꾼의 하나로 여김 받아도 좋으니까 아버지의 집에 있겠다는 그 심정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함께 하는 그 집에 거하는 것이 곧 기쁨이고 복임을 아는 것입니다.

 

 

유다가 다시 건축하는 성전은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상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다는 성전을 통해서, 그리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신뢰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근거로 해서 복을 받기를 기대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무엇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온 자가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이고 자비하심입니다. 이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자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돌아온 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를 떠난 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고 저주를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때문에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논하지 않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그대로 있든 예루살렘에 돌아왔든 중요한 것은 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돌아온 그들에게는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신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하고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하기 전 유다에게는 화려한 성전이 있었고 제사와 제물을 바치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멸망을 받은 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났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로 제사하고 제물을 바쳤을 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니까? 그런 것이라면 여러분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실패자임을 절감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비와 긍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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