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2011.03.06 18:53

(2강) 환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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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1:7-21http://onlycross.net/videos/zec/zec-01072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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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20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설교>

사람들은 편한 세상을 원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나라나 주변 환경이나 형편 모든 것이 자기 육체를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으로 구축되기를 열망합니다. 하지만 그 열망은 언제나 좌절로 이어질 뿐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편한 세상은 주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칙은 땀 흘리고 수고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죄 지은 인간에게 주어진 몫이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사람이 편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부터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분에 넘치는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했고 하나님께서 물을 달게 하심으로 마실 수 있게 하십니다. 그처럼 우리는 인생의 맛이 쓸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단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방식으로 인도하시고 다스리지 않습니다. 쓴물을 달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신다고 해도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자로 살아갈 뿐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마실 수 없는 쓴 물을 만난다고 해도 그 쓴물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8가지의 환상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8절에 보면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에 서 있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서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입니다(10절). 이들이 땅에 두루 다니면서 본 결과는 온 땅이 평온하고 조용하더라는 것입니다(11절). 평온하고 조용한 세상이야 말로 온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면 유다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도 평온하고 조용한 세상을 살았습니까? 스가랴는 유다가 패망하고 바벨론에 끌려가서 칠십년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겨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축하던 시기에 활동을 했습니다. 따라서 스가랴가 활동하던 시기의 유다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12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평온하고 조용한 삶을 누리게 하시면서 유다는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칠십 년을 고생했는데 언제까지 그들의 고생이 계속되게 하실 것입니까?’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천사의 말에 대해 하나님께서 15-17절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일한 열국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건축하여 번성하고 풍부한 곳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일한 열국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긍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영으로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사는 신자와 기존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림이 없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위한 인생만을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은 무조건 아무 일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인생만을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하는 것도 인생에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힘들고 어려우면 힘든 세월이 빨리 끝나기만 바랍니다. 인생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면서 즐거운 세월이 주어지기를 학수고대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안일함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말 탄 사람이 두루 다니며 본 세상은 조용하고 평온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조용하고 평온한 세상이 복을 누리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을 안일한 열국이라고 말씀합니다. 평온하고 조용해서 게으르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조용함과 평온함에 파 묻혀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대해 관심이 없고 구하지도 하는 것을 안일한 것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조용하고 평온한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관심을 둘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쉬울 것이 없는데 하나님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도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전혀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곧 안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심판하시고 유다를 다시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복 있는 자입니까? 육체적으로 편안한 삶을 산다고 해서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은 이러한 복을 추구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그것도 복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심판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짐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할 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조용하고 평온한 인생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아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진심으로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고통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징벌도 아닙니다. 유다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대해 관심이 없던 안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것들은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과 동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고통으로 끌어가시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분임을 신뢰하는 백성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3절에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백성으로 하나님께 나올 것을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다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백성으로 나올 때,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자비와 긍휼을 보게 될 것이고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신자 된 자가 추구하고 신뢰할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누구나 원하지만 그것을 복된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복은 육신을 기준으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준 되어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삶이 힘들다고 해도 그 힘듦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생각하게 하며, 나를 하나님께로 끌어가시기 위한 사랑이고 자비라는 것을 깨달을 때 힘들고 어려운 것들은 오히려 크나큰 유익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가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는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안일하지 않은 삶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18절부터 보면 4개의 뿔이 보인 두 번째 환상이 있습니다. 4개의 뿔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장장이 네 명을 보이시는데 그들은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 자들입니다. 즉 안일한 열국을 심판하기 위한 대장장이들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온한 세상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대장장이들이 세상을 깨뜨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배우며 이 배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안목이 우리에게 있다면 어려움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평온하다고 해서 안일함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모든 마음과 시선을 주께 두게 하는데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이러한 신자로 세우시기 위해 영을 보내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세상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곧 새로운 세상을 사는 새로운 백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육신의 편안함보다는 새로운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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