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2011.04.17 19:49

(7강) 환상(하나님의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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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6:1-15http://onlycross.net/videos/zec/zec-06011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7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4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15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설교>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다우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보존되도록 도우시고 힘쓰시는 분으로 새롭게 가공하여 전혀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신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다가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자신들이 가공한 하나님의 하나님 됨에 꿰맞추어 해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부담감이 전혀 없는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참된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비록 그 하나님이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부담이 된다고 해도,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오직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창조주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앙을 나를 위한 것으로 여깁니다. 나의 구원과 나의 복, 그리고 세상에서의 나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에게만 시선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6장에서 선지자가 본 환상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이야기입니다. 이 두 산은 구리로 되어 있는 산인데 단단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단한 산에서 병거가 나온다는 것은 병거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 일이 단단한 구리 산처럼 변하는 것이 없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고, 따라서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일 역시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네 병거의 환상은 자기 백성에 대해서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그 일은 결코 변함이 없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병거는 지금의 전차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에 해당됩니다. 그 병거를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건장한 말들이 메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천사에게 이것들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천사의 답을 보면 네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입니다. 이 네 바람은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 앞에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뜻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네 병거들은 나가서 땅을 두루 다닙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고 말합니다. 북쪽으로 나간 병거가 한 일이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하는 쉼이 된 것입니다. 영을 쉬게 하였다는 것을 개역한글에서는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북쪽으로 간 병거가 한 일이 하나님의 영이 쉴 정도로, 즉 하나님의 마음에 시원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할 정도로 시원한 일이었을까요?

 

 

북쪽이라면 바벨론을 의미합니다. 이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표적인 원수로 존재합니다. 그렇게 보면 북쪽으로 간 병거가 한 일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적에 대해 심판을 행하심으로 쉼을 얻는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심판을 행하심으로 시원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부득이 심판을 행하신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시고 애통해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걸맞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심판이 곧 쉼이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심판이 쉼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타인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심판이 쉼이 되신다는 이 말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오겠습니까? 오히려 듣기 싫은 떨떠름한 말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켜주시고 복 주신다는 말은 마음에 와 닿는데 심판을 하시고 더군다나 심판이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하신다는 것은 분명 귀에 거슬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같은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이 동의하셔야 하는 것은 ‘나 같은 자가 심판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죄에 대해 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분노하신다면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는 진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복을 바라고 편히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 육신이 유리함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10절부터 보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그들에게 가서 은금을 취하여 그것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게 하는데 예언의 내용은 싹이라는 사람이 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면류관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은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을 대제사장의 머리에 씌웠는데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이유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에게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바로 장차 나타날 싹을 의미합니다.

 

 

싹이라는 분이 오셔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심으로써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돌아오게 된 근거가 싹에게 있음을 깨닫고 싹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 싹이라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장차 싹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당연합니다. 죄에 속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쉼이 될 정도로 죄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런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은혜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죄로부터 돌아온 자들이 자신을 돌아오게 하신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은혜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싹이라 이름하는 분이 오셔서 건축하는 성전은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모인 백성들입니다.

 

 

15절을 보면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우리의 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싹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지어집니다. 이 말을 청종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지어진 성전을 바라보는 그가 바로 예수님이 이루시는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는 백성입니다. 이 백성의 특징은 자신의 수고와 공로는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심판이 당연한 자신을 예수님의 피로써 구원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것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즐거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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