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2011.06.05 18:04

(14강) 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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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12:1-14http://onlycross.net/videos/zec/zec-120114.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5 유다의 우두머리들이 마음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

6 그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설교>

 

세상의 모든 일이 내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관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면서 어떻게 할지를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으로만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뜻에 밀려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린 피조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피조물로써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들은 무엇 하나 인간의 뜻과 일치된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상관없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보게 하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생각하고 추구하고 소망하는 그 모든 일들과 연관된 내용들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내용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1절에 보면 하나님을 하늘을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분으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시면서 그 안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지 않고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의 몸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선지자는 사람의 심령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달라진 것은 몸이 아니라 심령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심령에 죄가 들어왔고 죄로 인해 부패하고 더러운 심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심령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심령의 새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고자 하십니다. 이처럼 새로운 심령의 사람을 가리켜서 새 이스라엘이라고 일컫습니다. 12장은 이 새 이스라엘이 어떻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장을 보면 그 날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3,6,8,9절). 그런데 그 날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예루살렘과 이방 나라와의 전쟁입니다. 이것을 보면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날’은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과 연관된 용어인 것입니다.

 

 

따라서 선지자가 말한 그 날은 메시아의 등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등장하면 세상에는 전쟁이 발생하고 그것이 곧 종말의 때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등장은 이처럼 세상의 운명과 연관된 사건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등장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메시아의 등장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오신 분으로 높이면서 그 날을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전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전쟁에 대해 감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둠에 갇혀 살아가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으로 오셨다는 것은 새로운 나라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새로운 나라는 당연히 기존의 나라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왕이신 예수님의 등장은 기존의 나라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동방 박사들에게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 대해 물었을 때 온 성이 소동을 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왕으로 인한 현상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고 따르는 그 자리에는 항상 싸움이 뒤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싸움은 자기 것과, 자기 자존심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길을 가는 신자에게 싸움은 당연한 것이며, 그 싸움으로 신자 됨이 증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장의 그 날에 등장하는 싸움은 곧 예수님의 오심으로 세워지는 새로운 나라와 기존의 나라와의 싸움을 의미하는데 그 싸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령을 새롭게 하신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이스라엘의 힘이 아닙니다. 이것을 7절에서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셨다는 것은, 유다가 자기 구원을 위해서 한 것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이유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영광이 유다를 구원하신 하나님께만 있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으로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새롭게 지음 받은 신자는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새 사람 된 증거입니다. 기존의 불의한 심령으로는 자기 영광만을 구할 뿐입니다. 자신의 존귀와 자기 이름을 위해 힘쓸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지음 받은 심령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하신 분의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성은 기존의 인간성과 충돌될 수밖에 없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심령을 새롭게 하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찌른 바 그를 바라보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찌른 그를 바라보면서 애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심령을 새롭게 하심으로 나타나는 신자의 애통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내가 바로 예수님을 찌른 자라는 가해자의 자리에서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떳떳할 때 신자는 심령의 무너짐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가해자가 곧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심령의 무너짐과 함께 애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새 이스라엘입니다.

 

 

세상은 땅의 것으로 애통해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예수님을 찌른 가해자로써 자기 죄에 대해 애통해 합니다. 신자의 이러한 애통을 통해서 항상 떳떳한 자로 살아가는 세상이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이러한 전쟁이 있습니까? 죄에 대해 애통해 하면서 예수님만 믿는 자로 살아가는 신자에게는 매일매일이 싸우는 그 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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