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011.07.03 13:59

(1강)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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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1:1-5http://onlycross.net/videos/mal/mal-01010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설교>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여기십니까 아니면 사랑을 받지 못한 자로 여기십니까? 물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환경과 형편을 본다면 쉽게 사랑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환경이나 형편은 극빈자에 비하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누리는 환경이나 형편을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이 말에 대해 이스라엘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는 말로 반응합니다. 이 말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씀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면서 중단된 제사도 다시 시작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번성과 복을 말씀하셨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어렵고 힘든 삶이 계속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힘든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으로 욥이 등장합니다.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식을 모두 잃어버렸고 자신은 질병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욥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라고 하신다면 과연 수긍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삶에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내가 원한 삶을 살고 원하는 것을 누려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삶을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근심과 걱정거리 밖에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들고 팍팍한 인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 깊이 다가오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고 지키신다는 것도 실감하지 못합니다. 결국 신앙은 형식만 남게 되면서 ‘하나님이 사랑하셨다’는 말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라는 반문으로 반응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라고 반응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2절 하반절과 3절을 보면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사랑이고 미움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인간됨을 보시고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구분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할 자로 야곱을 택하시고 미워할 자로 에서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에서가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미움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애당초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자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에서는 미움을 받을 자로 남겨진 것이고, 야곱은 미움을 받을 자에서 사랑을 받을 자로 택함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으로써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 받을 수 없는 자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된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라는 자신들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서의 삶의 형편과 환경에서만 사랑을 이해하고 확인하려고 했기에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직 선택을 근거로 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역시 하나님의 선택을 근거로 해서 설명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의 존재는 하나님의 선택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지 않았다면 신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자 됨을 복을 받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신자 되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만 좋으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앙은 환경과 상관이 없습니다. 환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우리는 항상 내 중심대로 살아갑니다. 환경이 좋으면 하나님을 잊고 환경이 나쁘면 불평합니다.

 

 

이러한 우리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자로 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어떤 환경을 주셨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세상에서 잘되고 못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에돔은 에서를 의미합니다. 이 에서를 가리켜서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 안에 있다는 증거는 그들이 쌓을지라도 하나님이 헐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택한 받지 못한 자의 운명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 안에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결국입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번성은 번성이 아닙니다. 지금 쌓고 있는 것이 힘으로 여겨지겠지만 결국 허물어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는 것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 11장의 말씀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증거하고 보는 것처럼 믿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상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신자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것에서 찾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가치를 알고 그 세상을 바라보고 소망하게 된 것을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으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는 사랑을 받고자 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이 무엇인지에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로 확증된 사랑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