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011.07.24 20:02

(3강) 생명과 평강의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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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2:1-9http://onlycross.net/videos/mal/mal-0201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설교>

 

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피조물인 신자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마련이지만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신 뜻은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4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이 항상 이스라엘에게 있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항상 이스라엘에 있게 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바라보며 언약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언약의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왜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이 항상 이스라엘에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필요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2절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시는데 이스라엘의 복을 저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2절 뒤에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듣지도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저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없고 따라서 영원히 저주에 갇힐 수밖에 없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스스로의 힘으로 저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진 거룩한 제물의 피로써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거룩한 피가 그들의 생명이 되는 관계에 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에 있기 위해서는 거룩한 제물의 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자신의 실상에 대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나 같은 자가 아무리 복을 빈다고 해도 주어지는 것은 저주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아래서 실감하게 되는 것은 명령을 지켜 행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저주에 갇힌 인간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생명의 언약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고, 저주에 갇힌 자가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을 알고 언약을 믿는 신자가 언약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령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지킬 자질이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무너뜨리면서 자기의 세계만 굳게 세우려고 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저주는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저주가 당연하다면 우리가 겪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난 자가 고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저주에서 건지시기 위해 구원자를 보내시고 그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거룩한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에 언약은 저주에 갇힌 자에게는 분명 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육신의 삶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저주에 갇힌 실상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기 때문에 이방인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힘든 삶이 계속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셨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사랑하였나이까’라는 반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이스라엘에게 함께 했습니다. 그 증거가 이스라엘 안에 언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말한 대로 이 언약은 이스라엘에게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생명도 평강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도 보지 못합니다. 단지 삶이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는 생각만 굳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편안함을 원합니다. 사실 편안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한 바람은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안한 삶도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편안한 삶도 잠시 후면 끝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코앞에 있습니다. 오늘의 일일 수도 있고 내일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인간은 영원한 저주의 세계, 고통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무시하겠지만 신자는 말씀 안에서 저주의 세계를 보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편안한 삶이 아니라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신자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 안에서 언약을 이루실 분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둔 신자에게 참된 복은 생명입니다. 저주에 구출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절기의 희생의 똥은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바친 희생의 제물을 말합니다.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도 모른 자가 바치는 희생의 제물은 냄새나는 똥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바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을 줄 아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서 바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을 위해 베푸신 것을 받을 줄 알고 그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신앙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치는 것을 신앙으로 강조하는 현대 교회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 안에서 교인들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이 바치는 경쟁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미 존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귀한 복의 세계를 살고자 하신다면  여러분이 처했던 자리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