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011.07.31 13:04

(4강) 어떻게 괴롭혀 드렸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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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2:10-17http://onlycross.net/videos/mal/mal-02101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설교>

 

우리 눈에 펼쳐지는 세상의 현실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큰 함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현실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자라는 인식이 살아있습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리면서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더 평안과 부를 누리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혼란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같은 현실이 계속 될 때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게 되면서 믿음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기 십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속이 곧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그 사랑이 우리의 현실의 문제에서도 나타나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가 우리를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십자가로 인한 구속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속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복의 자리에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큰 것을 받았으니 나머지 작은 것은 사소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연약함으로 인해서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고 그가 곧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라고 하면서 발뺌을 합니다. 말로 여호와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은 척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그들 생각에는 말로 여호와를 괴롭힌 적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 생각에는 여호와 앞에서 자신들은 떳떳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보다는 믿지 않은 악인들을 더 돌봐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 현실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실종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자신들이 언제 말로 하나님을 괴롭힌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말로 하나님을 괴롭혔는지는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는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를 좋게 보신다는 말, 악인이 잘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말, 그리고 세상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말들이 하나님께는 괴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스라엘이 그들이 악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더 잘되어야 할 만큼 나은 사람들입니까? 10절에 보면 그들은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라고 책망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아버지를 섬기는 관계에 있고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일한 피조물이라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아버지를 섬기는 관계를 무시하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함으로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의 사고방식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분 아버지를 섬기는 관계에 있고 아버지라는 관계 안에서 그들을 모두 형제입니다. 그런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는 것은 오직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형제가 해를 입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이방인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또한 11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성결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즉 이방인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복을 얻을 자격이 없는 이방인과 동일한 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한 대로 자신들의 괴로움을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로 여겼습니다. 제사도 드리고 제물도 바치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13절에서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제단에 나오되 자기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나왔습니다. 즉 죄로 인한 애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한 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눈물과 울음과 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는 그들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받지도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마치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처럼 그들의 모든 제물을 돌아보지도 받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을 주지 않고 악인이 잘살고 자신들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이방인보다 더 잘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15절에서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오직 하나만을 만드신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혼하는 것과 아내를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신다는 것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만을 만드신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혼하고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아내로부터 마음이 나눠진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만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나눠지지 말아야 할 이스라엘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이혼을 하고 아내를 학대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떳떳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고 무엇이 이스라엘다움에서 멀어지는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원하신바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종교적 실천과 행함이 있으면 신앙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실천과 행함이 있을수록 떳떳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나옵니다.

 

 

 이러한 사람일수록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떳떳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현실 문제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뭡니까’ ‘할 만큼은 했습니다’는 식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면서 결국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있다며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오히려 함정이 되어 여러분을 불만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거부하시고 오직 예수님만 받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현실이 어떻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장 복되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