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011.08.14 13:59

(5강) 공의로운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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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3:1-6http://onlycross.net/videos/mal/mal-03010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설교>

 

라기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의 이스라엘 신앙상태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에 대해 별 다른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고 신뢰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는 2:17절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들은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좋게 보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기쁨이 되어주신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역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 듣고, 하나님의 사랑과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세상에서 실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도, 공의도, 사랑도, 무엇보다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것처럼 악인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세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나님의 정의는 죽었고 하나님의 존재 역시 알 수 없다고 외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실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살아계심을 실감하십니까? 혹시 성경 말씀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실 것이고 그 사자는 하나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할 것인데 언약의 사자로 임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심판자로서의 길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인데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일을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행한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옴으로써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사자가 오기 전에 세상은 죄에 대해서 또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한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사자를 통해서 드러내신다는 것이 사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온 세례요한으로 이어집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상 전부를 악으로 규정하고 외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악을 드러내기 위해 주가 오신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주가 임하시는데 그 주는 금을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불과 잿물은 정화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녹으면서 불순물과 순금으로 분리됩니다. 잿물은 옷감의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이처럼 불순물을 제거하는 능력으로 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과 잿물로 오시는 주 앞에서 누구도 ‘나는 정결하다’ ‘나는 더럽지가 않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불순물이 가득한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주가 오심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처럼 악을 드러내시는 일을 하나님의 정의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정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는 악한 자는 벌 받고 착한 사람은 복 받고 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악을 악으로 드러내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는 누구도 ‘세상에 의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악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악인이었음을 알게 되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의인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하나님의 정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은 잘되고 이방인은 벌 받고 망하는 것을 정의로 여겼을 뿐입니다. 때문에 그들 눈에 보이는 현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의 힘으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는 현장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파되는 지금도 하나님의 정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서 말하는 공의로운 제물은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질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친다고 해도 공의로운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공의로운 제물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의로운 제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제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제물을 바쳐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기 죄를 보지 않는 악입니다.

 

 

공의로운 제물은 우리의 정성도 노력도 우리의 것을 바치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공의로운 제물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제물을 바쳐서 복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나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주께 나오는 것만이 공의로운 제물을 바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기뻐하시고 이 제물을 바치는 그들이 불과 잿물로 연단된 깨끗한 자로 여김 받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심판에 해당되는 자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악함을 돌아보지 않고 다만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욕망에만 매어 살면서도 그것을 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풍요가 곧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사고방식의 세상을 향해 말씀을 외칩니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고 외면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어떤 말을 해도 그들은 그들이 해오던 대로의 신앙만을 고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현실을 더 의지할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이 무엇을 하고 바친다고 해도 공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의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도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현실이 되면 잘 살고 못사는 것이 말씀 안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일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면서 예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우리의 실상을 잊지 않게 하십니다. 공의로운 제물은 이러한 신자에게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