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1.11 09:40

(12강)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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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5:1-4http://onlycross.net/videos/eze/eze-05010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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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설교>

 

사람은 스스로 자기만의 진리를 제조해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자신이 제조한 것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진리라고 떳떳하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자기만의 진리는 선악체계로부터 나와지는 것인데 그 특징은 자신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령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밀려나는 것은 저주로 인식하고 중심에 우뚝 서게 되는 것을 사랑의 하나님이 베푸신 복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오직 자기 현실을 위해 존재하는 수호신일 뿐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외친다고 해서 하나님일 수 없고 예수님을 외친다고 해서 예수님일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를 찾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은 피조물이 원하는 현실에 동조하고 부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피조물이 어떤 존재입니까? 죄로 인해 부패해졌고 악한 상태에 있습니다. 모든 생각이 자신을 향해 있기에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각과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러한 인간을 악하게 보시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노아 시대와 다를 바 없는 피조물, 인간의 생각에 동조하시겠습니다. 인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일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뜻 외의 것은 철저히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면서 우리 속에 가득한 돈 걱정, 취업걱정에 대해서 외면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걱정거리를 해결해주시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방식과 우리의 기대를 따라 도우시지도 일하시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뜻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걱정, 염려입니다. 우리는 내가 처한 현실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놓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 위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고상한 도구로 사용해주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현재를 원하는 복으로 채워주심으로 세상을 향해 고개 들고 ‘신앙생활 잘하면 복 받는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고 자신을 증거물로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로 인정하신다면 그러한 헛된 기대와 망상은 잘라져야 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여긴다면 자존심이 무너지고 조롱 받고 손가락질 받는 시궁창 같은 자리까지 내려가 머물게 된다 해도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항거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본이 되는 좋은 모습으로 긍정적인 신자 됨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접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에 붙들려 결국 신앙이 짐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꿈꾸는 좋은 현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현실을 안겨 주실지 알 수 없으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명령하시는 내용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납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들은 하나 같이 에스겔 개인에게는 득이 되지 않고 오히려 힘든 일일 뿐입니다. 에스겔이 이 같은 현실을 원하고 선지자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밀어 넣으신 현실이고 에스겔은 그 현실에 순종하고 있을 뿐입니다.

 

 

1절을 보면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저울로 달아두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다릅니다. 그것도 제사장에게는 쉽게 행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레위기의 규례를 하나 보겠습니다. 레 21:4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이스라엘 백성의 어른으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어린아이로 여기신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은 어른과 어린아이의 관계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과 어린아이의 관계에서 쉽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는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고 어른은 어린아이로부터 공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제사장을 이스라엘의 어른으로 세우신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공경 받고 편히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집안에 어른이 없고 어린아이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엉망이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릴 능력이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우며 바른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을 어른으로 세우신 이유입니다.

 

 

하지만 어른인 제사장이 말로만 어린아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레 21:6절에서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존재하기 위해 제사장은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레 21:5절에 보면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제사장이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처럼 되고 수염을 깎는 것은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제사장인 에스겔에게 머리털과 수염을 깎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에게 쉬운 일일까요? 에스겔이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처럼 되고 수염도 깎은 채 나타난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어른답지 못한 그의 행동을 조롱할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레 14:9절에 보면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입니다. 나병 환자가 환부가 나아 정결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갑니다. 제사장은 환자를 진찰하여 환부가 나았으면 새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잡아 그 피를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을 뿌리고 살아있는 한 마리를 들에 놓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장막 밖에서 이레를 머물다가 일곱째 되는 날에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나병 환자가 정결함을 받는 규례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머리털과 수염을 미는 일은 나병 환자로 있다가 정결함을 받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머리털과 수염을 민다면 그것은 자신이 나병 환자였음을 선포하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털과 수염을 미는 일이 나병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요? 나병 환자들에게는 자신이 나병이 나아 졍결함을 받게 되는 길이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뻐하며 머리털과 수염을 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거룩한 제사장에게는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대머리처럼 되고 수염도 깎은 에스겔을 보고도 조롱하지 않고 오히려 에스겔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곧 나병환자와 같은 더럽고 저주받은 존재로 인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나병은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입니다. 그래서 나병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몰골이 흉측하게 변하고 몸에서는 끊임없이 진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나병에 걸리게 되면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되어 유대 사회로부터도 단절되게 됩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나병입니다.

 

 

이러한 나병이 낫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나병이 나았습니다. 제사장으로부터 나병이 나았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받으면 유대 사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병 환자에게 머리털과 수염을 미는 일은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머리털과 수염을 깎은 에스겔을 보고도 조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나병 환자로 여겼을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부정하고 더러운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으면서도 그 내막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도우셔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만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에게 주어질 것은 심판 밖에 없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삼분의 일의 의미는 12절의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삼분의 일을 성읍 안에서 불사르는 것은 삼분의 일이 전염병으로 죽을 것을 의미하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는 것은 삼분의 일이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을 의미하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삼분의 일을 사방에 흩어버리시는 일, 즉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하시고 다른 나라로 피신하게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일어날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가를 머리털과 수염을 깎은 에스겔을 통해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선포의 내용은 ‘예루살렘아 너희는 머리털과 수염을 깍은 에스겔을 보고도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삼분의 일에 담긴 심판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을 향해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악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악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롬 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합니다.

 

 

온 우주 만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홍수 심판 후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으로 인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세상은 당연히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면서 늘 자신을 영화롭게 되는 것에 뜻을 두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세상이며 이러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기 백성만을 남기십니다. 3,4절의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는 내용이 하나님이 남기신 자기 백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머리털과 수염을 깎은 제사장처럼 조롱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남기신 참된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더럽고 부정한 나병 환자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하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선포 받는 것입니다.

 

 

 정말 불행한 것은 자신의 부정과 더러움을 보지 못하고 예수 믿겠다고 설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결과를 이스라엘을 세워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그 어떤 신앙 행위가 있다 해도 이방인으로 취급될 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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