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6.24 13:22

(34강) 내 집을 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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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2:7-17http://onlycross.net/videos/jer/jer-12071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8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9 내 소유가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것을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헐며 내 몫을 짓밟아서 내가 기뻐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도다

11 그들이 이를 황폐하게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

12 파괴하는 자들이 광야의 모든 벗은 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

13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리라

15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우리는 하나님을 좋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당연히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좋지 않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는 하나님으로 변개시켜 놓고 말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풍성히 채워주는 하나님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풍성히 채워주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모두가 세상의 부와 영광으로 누리게 되는 것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악한 자가 형통하고 반역한 자가 평안함을 누리는 마치 모순처럼 보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바라보아야 하는지는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7,8절을 보면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 집은 성전을 가리키고, 내 소유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소유라고 말하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이야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을 자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집을 버리고 소유는 내 던져 버리고 사랑하는 것은 원수의 손에 넘겼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소유가 숲속의 사자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를 내고 그래서 그를 미워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들을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단지 그들의 악에 대한 심판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중심적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악에 대한 심판의 차원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15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달라지게 하기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달라지게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는 내가 불쌍하다고 얘기해도 우리의 현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내 집이라고 하는 것을 버리시고 소유도 던져 버리시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신 모든 일에는 달라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일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버리시고 던져 버리는 일이 결국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도구로 부름 받은 것이 신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도 내가 좋아 하는 것이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14-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을 뽑아내서 다시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는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게 하는 변하지 않는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이스라엘이 깨닫게 된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고 그 이름을 부른다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는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중심 원칙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달라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마음을 배워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존재 이유라면 눈에 드러나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형통하고 평안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버림받고 던져짐을 받았다고 해서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손에서 뽑아내어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알게 된 백성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인도해 들이셔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우고 깨닫게 하시는 것처럼 신자 역시도 이 세상에 이 같은 사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증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누구시고 예수님은 누구신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형통과 평안이라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면, 결국 다른 사람도 잘못된 하나님을 알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부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셔서 신자 된 사명을 다하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때로는 던지시고 때로는 버리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불쌍히 여기심으로써 하나님의 긍휼을 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간섭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방향이고 일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하나님을 안다면 넘어지고 실패한 것 같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넘어지고 실패한 것 때문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도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감사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으로 달라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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