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5.23 20:23

(29강) 영혼을 사냥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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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3:17-23http://onlycross.net/videos/eze/eze-13172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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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

18.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19.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20.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부적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아 주며

21.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2.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23.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설교>

 

모든 종교는 중심에 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가 있습니다. 이처럼 ‘나’가 중심이 되어 있을 때 신의 존재는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나를 위한 신, 나를 위로해주고 도움이 되며 힘을 주는 신으로 해석하여 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가 중심이 되어 신을 섬기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일 뿐이며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 되고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만약 현대의 기독교에 이러한 종교의 본질과 속성이 묻어난다면 기독교 또한 종교화 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의 기독교는 성경이 말해주고 있는 ‘나’가 아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참된 신앙의 모습은 상실되고 종교의 모습으로만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 현대의 기독교는 여느 종교와 다를 바 없이 보입니다. 즉 기독교나 불교, 다른 종교 모두가 ‘도긴개긴’이고 ‘도토리 키 재기’이며 ‘오십보백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중심에 ‘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불교를 믿는 사람도 자신을 위한 신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성경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신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인간의 영광은 관심 밖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자기 영광을 위해 신을 찾는 자기중심적 존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국은 반발 또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 성경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중심에 있게 되면 무엇이 참된 복음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에게 도움 주는 신으로만 생각하기에 참된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참된 복음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아무리 옳게 여겨진다 해도 버려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전도와 선교다’랄지 ‘교회는 구제에 힘써야 한다’랄지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살아있게 되면 결국 그 생각이 기준이 되고 틀이 되어 판단하기 때문에 비록 참된 복음이라 해도 전도와 선교를 말하지 않고 구제를 말하지 않으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루살렘에 평강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평강이 있다고 합니다. 평강은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 자신이 속한 교회, 가정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평강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평강이 있어야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백성이 평강을 원하기에 선지자들은 ‘평강이 있다’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의 선지자가 자기를 위해 예언하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예언하는 여자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여자 선지자를 일컫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말고도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면서 영혼을 죽이는 여자 거짓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절을 보면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 대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로 말합니다. 아마 이 여자들은 손목에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적 의미가 있는 끈을 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을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여자들이 행했던 또 한 가지는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해 수건을 만든 것입니다. 이 역시 주술적 의미가 있는 수건을 머리에 쓰게 함으로 백성들을 자신의 다스림에 있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가령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자신이 신과 가깝게 교통하여 인간의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몸과 자신이 거하는 공간에 여러 장식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뭔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아맞히고 잘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무당이나 점쟁이의 말에 끌려가게 되고 그 말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 여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며 재앙이 있을 것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이용하여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즉 자기 배를 불리고자 하는 거짓된 존재들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된 존재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고 자기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선지자들과 자기 마음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백성들의 만남인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 속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자리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미 거짓된 것이 참된 것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일까요? 자기 입맛에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고 자기 마음대로 믿는 자기가 중심이 된 종교적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진심으로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믿음의 길로 가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생각이 말씀을 앞서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말씀을 앞서게 되면 결국 기존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말씀을 단지 말로 받아들이고 평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4:19-20절을 보면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만 듣고 말이 옳으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능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진심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말로 그치지 않고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하나님이 자신을 벌레처럼 취급한다 해도 그조차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인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이 이러한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비록 말이 옳다 해도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하고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능력이 없이 말만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이용하여 자신이 살고자 하는 거짓 선지자와 같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이 옳으니 그 사람도 옳다’는 생각은 그의 말에 속는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말을 해주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이 사냥 당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4:9절을 보면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알게 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사도인 자신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가장 밑바닥에 두셨고 모든 세상 속에서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말이 아니라 자기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기 백성을 세상 높은 자리에 두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나’ 중심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이 자기 입맛에 맞고 또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의 말을 진리로 말하는 말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말 그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높여주는 분이 아니라 밑바닥으로 데려가시는 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분명 옳습니다. 하지만 사도의 옳은 말을 저와 여러분이 인정하고 제가 또한 사도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고 해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적인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것이 우리의 경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음을 핑계 삼아 자신의 옳음을 보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여러분 역시 ‘나’가 중심되어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은 있으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의 말 그대로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이 벌레로 취급하신다고 해도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는 복음을 알고 복음을 말하는 목사다’라는 생각에 붙들린다면 저 역시 ‘나’가 중심되어 나를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며,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말조차 나의 옳음과 의를 의식하며 하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을 추구하게 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언제나 말씀이 자신을 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끌어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처럼 진노의 심판으로 끌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 말씀의 능력이고 기적인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고 말합니다.

 

 

거짓선지자의 거짓 예언은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데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영혼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모든 영혼은 죽었는데 그들 가운데 살리기로 작정한 영혼이 있고 죽음에 그대로 내어 버려두기로 작정한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살리기로 한 영혼을 누구도 죽일 수가 없고, 죽음에 내버려둔 영혼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명이 아닌 거짓 예언, 즉 거짓말이 영혼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일까요?

 

 

이것은 거짓말이 실제로 영혼을 살리고 죽이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거짓말에 의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은 죽은 영혼으로 취급되고 반대로 살지 못할 죽은 영혼이 산 영혼으로 취급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습니다’라는 거짓말에 ‘그러한 십일조는 없습니다’라고 하게 되면 죽을 영혼으로 취급되고,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철저히 잘하는 사람은 산 영혼으로 대접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말로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부적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아 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을 사냥하는자들에게 붙들린 그 영혼을 자유롭게 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인간 중심으로 일하시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거짓 예언은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인간중심의 말은 비록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할 수는 있지만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인간의 말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듣기 좋은 말로 인간적 안도감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말로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에 기뻐하는 죽은 영혼들의 모임입니다. 거짓 예언에 의해 그 영혼이 사냥 당한 채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에게 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심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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