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5.30 16:28

(30강) 내 백성으로 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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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4:1-11http://onlycross.net/videos/eze/eze-14011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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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2.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4.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5.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6.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7.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8.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9.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10.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11.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11절의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뜻과 계획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루고 계시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에 죄와 심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까지 에스겔을 성전으로 옮기셔서 드러내신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는 말씀으로 향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으로 삼고자 하는 대상이 있다면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사랑을 베푸시면 될 것인데 왜 죄악을 드러내시고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하시겠다는 것인데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지만 백성이 되게 하겠다는 대상은 불의하고 부정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존재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율법을 따라 할례를 행하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지 어떤 혈통적 조건과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백성으로 삼으시고 함께 해주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은 또 무엇을 위해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일까요? 이것은 마치 ‘구원 이후’에 대한 이야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신앙이 엉망인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리가 없다는 자기 계산과 함께 스스로 구원 받을만한 사람의 범주에 속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행함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구원의 여부를 자기 행함에서 확인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과연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물음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회가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오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만하면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확보해 놓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살면서 세상의 복을 얻는 일에 힘을 쏟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라고 말씀하시지만 과연 그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는 사람들일까요? 아닙니다. 11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미혹에 의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고 모든 죄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죄로 인해 더럽지 않은 거룩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더러워졌으며 이 더러움은 인간 스스로의 재주와 방법으로는 씻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 될 사람은 아담 이후로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간과하고 무시한 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나는 구원 받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 구원 받은 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더 큰 복을 누리고 잘 살 수 있을까의 문제에만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이었음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들의 죄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에스겔을 찾아온 장로 두어 사람은 장로들의 대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장로가 선지자를 찾아왔다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답을 듣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사실 이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자기들의 문제로 인해 선지자를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와 묻는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3절)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까지 각종 우상을 들이고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이젠 그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디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우상을 마음에 까지 들였다면 그 마음조차도 우상으로 가득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자기 마음에 들인 우상을 찾아가서 묻고 빌면 되는데 왜 에스겔을 찾아가서 묻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선지자인 에스겔을 찾아가서 묻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마음에 우상을 들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기 우상의 의미를 알면 이해될 것입니다.

 

 

마음에 우상을 들이고 선지자를 찾는 것은 에스겔을 찾아온 장로들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4절에서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족속 모두가 우상을 마음에 들인 상태에서 선지자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인 것으로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한 ‘자기 우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에스겔이 성전에서 목격한 우상은 형상과 그림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우상은 모두가 형상이 있고 그림으로 그려져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마음에 들였다면 형상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뜻일까요?

 

 

가령 부처의 형상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섬기는 것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였다는 의미일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상의 형상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섬기는 사람이 선지자를 찾아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처의 형상을 마음으로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절을 찾아가 승려에게 묻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상을 마음에 들였다는 것은 단지 우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우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7절의 말씀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라는 말씀에서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에 주목해 보십시오.

 

 

신 5:8절을 보면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라고 말하고 신 16:22절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라는 단서를 제시합니다. 즉 자기를 위하여 만든 모든 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든다는 것은 자기 영광, 자기 이름, 자기 평강 등등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을 찾는 것을 뜻합니다. 형상을 만들게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보다 보이는 대상에 더 신뢰가 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기를 위해 신을 찾는다면 그에게 하나님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결국 에스겔을 찾은 장로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였다는 것은 그들 마음에는 자기만 있을 뿐 하나님은 없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는 상태에서 선지자를 찾아 묻는다면 자기를 위한 물음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누구든 자기를 위해 묻는 물음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기 마음에 우상을 들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찾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들였다고 생각하지 우상을 들였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묻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을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인 것으로 말씀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를 위해서 찾아와 묻는 사람들을 자기를 위해 필요한 대상과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대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목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해 설교하는 목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10절에서 이러한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다고 하시며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행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를 더럽히는 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백성으로 삼은 자들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6절)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문구대로 하자면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기 우상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자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위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십시오”

 

 

어떻습니까? 지극히 성경적인 말로 들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말 앞에 여러분은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본성적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마음에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린 늘 자기를 위하는 우상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즉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인 상태, 이것이 우리의 실상이고 비록 예수를 믿게 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그 답을 11절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시겠다는 것이 답입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것으로 확인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말씀이 이루어진 현실에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일까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씀이 이루어진 현실에 있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진 현실 안에서 신자는 거룩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의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죄에 붙들린 나를 볼 수 있고 내 안에 우상을 들이고 있음을 알기에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절실히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어떠함을 알게 되고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는 우리 마음을 깨뜨리시고 그 자리에 은혜와 사랑을 남겨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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