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8.29 17:04

(43강) 더럽혀진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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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20:10-17http://onlycross.net/videos/eze/eze-20101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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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설교>

 

지금까지 에스겔에서 강조되었던 이스라엘의 죄는 우상 숭배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에스겔 선지자의 시대에 이르러서 성행되었던 죄가 아니라 조상 때부터 계속된 죄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도 애굽 땅에 있던 이스라엘이 “너희는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반역하여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상을 떠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분노를 쏟으면 진노를 이루겠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문제가 우상숭배에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우상과 함께 안식일 문제가 언급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이라는 규례를 주었습니다. 이 규례는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는다고 말합니다(11절). 하지만 이스라엘 족속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기에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애굽의 우상으로 스스로를 더럽힌 이스라엘에게 분노를 쏟으며 진노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서 결국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이유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의 앞에서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거룩한 자기 이름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본문의 내용으로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상의 섬김과 함께 언급된 안식일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다고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다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규례의 중심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시면서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되는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것으로 말합니다.

 

 

여러분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는 곧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상식처럼 박혀 있기 때문에 안식일의 의미와 주일에 대한 의미가 크게 오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역시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규례를 나름대로 철저히 지켜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안식일 규례를 멸시하여 하나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다고 하시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평생 동안 주일 예배에 빠져 본 적이 없고 주일에 직장을 가거나 장사를 한 적이 없는 기독교인에게 ‘당신은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라고 한다면 인정하겠습니까? 아마 화를 낼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묻기 위해 에스겔 선지자를 찾아온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은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안식일 규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안식일 규례, 또는 오늘날의 주일 성수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은 행함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 행함이 있어야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됨이 지켜진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성수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교회 일에 힘쓰는 것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주일관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과연 안식일을 그렇게 말할까요? 10-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준행하면 삶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려고 안식일을 주어 표징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켜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그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는 통로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는 행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일을 쉬라고 하시는지를 아는 앎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취지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준행하는 것을 행함으로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고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하나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율례를 행하지 않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악행인 것입니다.

 

 

먼저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말은 구약의 안식일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금의 시대에 안식일은 없습니다. 안식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규례가 예수님으로 성취되었기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한국 교회가 집착하는 주일성수와 십일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는 특정한 날을 거룩한 날로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없고 십일조라는 명목의 헌금 또한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사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그동안 교회가 신앙의 근간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지 않고 주일성수, 십일조에 두었다는 의미가 될 뿐입니다.

 

 

15절에 보면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름다운 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6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안식일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식일은 일주일 중의 하루, 즉 날입니다. 과연 날에 해당되는 안식일이 더럽혀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12절을 보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으로 삼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나 사이’,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언약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의 관계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표징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것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일을 쉼으로써 ‘우린 안식일 지켰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과 어떤 언약 관계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던 것입니다.

 

 

언약의 표징으로 주어진 것은 안식일 외에 할례가 있습니다. 창 17:10,11절에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 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안식일과 함께 할례가 언약의 표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발생한 언약 자손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할례가 비록 남자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것으로 행해지지만 실제 의미는 생식기 전부를 잘라 버리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남자의 생식기 전부를 잘라 버린다면 육신의 방법으로는 후손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이스라엘이고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 백성다움이기 때문에 할례를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할례라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방법, 공로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언약으로 존재하게 됨을 아는 마음의 할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할례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를 골 2:1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할례’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피가 공로가 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의의 백성으로 존재하게 됨을 믿는 것이 할례를 받은 것이고, 이러한 할례는 인간의 손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그리스도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할례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안식일 의미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할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언약의 표징이 할례는 생식기 끝을 자르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안식일은 일을 쉬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일을 쉬라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인간의 일, 즉 인간의 행함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할례와 함께 언약의 표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할례를 행하고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광야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안식일을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약속의 땅에서 존재하게 됨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고 찬양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 날의 육신의 일을 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 존재함을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오신 지금에는 그리스도가 곧 안식일이 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의롭게 되었음을 믿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자로 존재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십니까?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납득이 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말을 제가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신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이미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고 그리스도의 세계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안식일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킨다고 여겼던 것은 모두 자신들의 생각이고 착각이었을 뿐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히려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상 섬김으로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고방식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교회 역시 안식일이 마치 신약에 와서 주일로 대체된 것처럼 말하면서 주일에는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으로 말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말은 없습니다. 만약 한국교회가 말하는 주일 성수가 신앙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다면 사도들이 왜 강조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인간이 정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킴으로 거룩한 신자로 존재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발상이야 말로 언약으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될 뿐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복을 받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항상 그런 인간으로 인해 더럽힘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의 말씀과 동일하게 우린 역시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바는 것이 마땅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 역시 아낌 받을 가치가 없는 우리를 아끼신 하나님의 은혜, 긍휼의 덕분입니다. 이 은혜 덕분에 오늘도 주일이라는 날에 모여서 예배하고 밥 먹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매일이 안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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