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8.06 17:35

(111강) 심해진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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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7:13-19http://onlycross.net/videos/gen/gen-47131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설교>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험악한 세월’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자신의 포부와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이뤄보려고 애를 썼는데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이방 나라에까지 오게 된 인생에 대한 소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유산이 장자에게로 돌아갔는데 형에게 유산을 빼앗길 수 없다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태중에 있는 아이가 그런 의도로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을 수는 없지만, 야곱이 그만큼 장자권에 대한 욕망이 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야곱이 팥죽으로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에서인 것처럼 변장을 하고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처럼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노력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원한 대로 되지 않고 실패하게 된 인간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지나온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험악한 세월로 말한 것입니다.

 

 

야곱에게 험악한 세월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와 복을 약속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결국 하나님의 복된 약속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시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험악한 인생으로 끌어가십니다. 방황과 실패와 후회의 인생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에서가 아닌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처음부터 야곱을 장자로 태어나게 하면 안될까요?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을 그렇게 끌어 가셨다면 야곱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험악한 인생 속에서 자신의 의도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온 인생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인생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인생만 알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생에서 자기만 볼 뿐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백성이 아니기에 야곱을 험악한 인생으로 끌어가시며 인생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간섭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험악한 세월에는 애굽 행이 있습니다. 야곱의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는 것은 야곱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 야곱 가문을 애굽으로 가게 하셔서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일까요? 불신앙의 세계인 애굽에서의 구원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온 야곱에게 요셉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합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3절을 보면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라고 말합니다.

 

 

기근이 더욱 심해지자 사방에는 먹을 것이 없게 되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도 기근으로 황폐하게 됩니다. 그러한 형편에서 요셉은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갑니다.

 

 

돈이 떨어지자 애굽 백성이 요셉에게로 와서 돈이 떨어졌으니 먹을 것을 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돈이 떨어졌으면 가축을 가져오면 곡식과 바꾸어 주겠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죽지 않기 위해 가축을 요셉에게로 끌어와 곡식을 구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을 때 또 다시 곡식이 떨어집니다. 돈도 떨어지고 가축도 없는 백성들은 결국 몸은 바로의 종이 되고 토지도 팔아 곡식을 구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토지를 모두 사서 바로에게 바친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요셉이 한 일을 납득할 수 있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즉 신자는 요셉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애굽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답다는 칭송을 받을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셉의 한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과 윤리적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적 행위와 윤리의 시각으로 볼 때 부딪히는 걸림돌입니다. 요셉이 행한 일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 했을 때 기대하는 내용은 기근에 시달린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배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다운 행동이고 윤리적으로도 칭송 받을 행동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 백성들에게 요셉이 칭찬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거주하는 야곱의 가문에게 요셉을 세워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이스라엘 됨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근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근은 삶의 풍요를 빼앗아 감으로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 가문이 거주하게 된 애굽에 기근이 있고 더욱 심해집니다. 애굽 백성들은 살기 위해 요셉에게로 와 돈을 주고 곡식을 사야했고 결국에는 가축도 토지도 내어 놓고 몸도 바로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허망한 생각입니다. 소유만 많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나의 소유로 여기는 것도 실상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애굽 백성의 모든 소유가 요셉에게로 이동되는 것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기근은 하나님이 있게 하신 사건입니다. 기근으로 인해서 애굽 백성은 돈을 내어 놓고 가축과 토지를 내어 놓고 몸도 내어 놓습니다. 몸까지 내어 놓았다면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 다스리는 세상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세상의 법칙임을 배워야 합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부자가 창고에 가득 쌓아둔 곡식을 보면서 남은 자기 인생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이 영혼을 부르시면 창고에 가득한 곡식도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음을 몰랐습니다. 육신도 자기 것이 아니고 숨을 쉬는 것도 하나님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모르고 세상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기근이 심해지자 애굽 사람들은 자연히 요셉에게로 옵니다. 요셉에게로 가야 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근이 아니라면 곡식은 자신들의 땅에 종자를 뿌려서 얼마든지 거둘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로 갈 이유가 없고 요셉이 가진 곡식에 대해서도 아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가지 않아도 생존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찾는 것은 천국을 보장받고자 하는 속셈일 것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다면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일용할 양식조차 하나님이 허용하심으로 나에게 주어졌음을 잊고 삽니다. 그래서 오늘에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령의 기근입니다. 세상에서의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과 상관없이 그리스도께로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알고 내게 있는 모든 것보다 예수님이 존귀함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의 종이 된 애굽 백성들은 이제 바로가 주는 것으로 먹고 살면 됩니다. 모두가 종이 되었기 때문에 타인보다 부요해지기 위해 경쟁할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주가 되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께서 주신 것으로 사는 그 나라의 백성이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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