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8.20 18:18

(113강) 야곱의 마지막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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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7:27-31http://onlycross.net/videos/gen/gen-47273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7.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설교>

야곱이 애굽 땅에서 17년을 거주하고 나이가 147세가 되어 죽을 날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17년의 애굽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어떤 생활을 했는가를 알리는 것이 성경의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는 것이 성경의 존재 이유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27절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애굽에서의 17년 세월은 충분히 설명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였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죽을 날이 가까운 야곱이 요셉을 불러서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말합니다.

 

 

죽을 날을 앞두고 남기는 말이기 때문에 유언의 성격을 띤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부른 야곱이 요셉에게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라는 말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 것은 요셉 덕분에 가나안에서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이주하여 생존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야곱이 그런 의미로 말했다면 야곱은 여전히 생존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험악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왔으면서도 배운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들들을 축복하는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야곱은 하나님에 대해 예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 역시 단지 생존의 문제에 도움을 입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생존해 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요셉에게 함께 하시고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손을 야곱의 허벅지 아래에 넣게 하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고 한 모든 말은 요셉의 인애와 성실함이 아니라 요셉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하심을 의지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야곱은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하심을 본 것이고 그 인애와 성실하심에 자신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부탁하는 것은 애굽에서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고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례를 치러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의 말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애굽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묘지에 묻히는 것이 야곱의 소망인 것입니다

 

 

사실 이런 부탁은 요셉보다는 장남에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야곱이 죽으면 장남인 르우벤이 가문을 책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에게 부탁하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요셉에게서 인애와 성실하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야곱은 인애와 성실하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께 죽은 후의 자기 몸을 부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말하는 조상의 묘는 아브라함이 헷 사람에게서 은 400세겔을 주고 산 막벨라 굴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에게 우호적이었던 헷 사람들은 사라를 장사할 매장지를 그냥 사용하라고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봐 두었던 막벨라 굴을 은 400세겔을 지불함으로 자기 소유로 삼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결국 성취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자기 소유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성취되어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후손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면 어디에서 생활하든 자신들이 거할 땅은 약속의 땅임을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애굽이 아니라 조상의 묘에 장사 지내달라는 야곱의 말은 죽어서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함께 하고자 하는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어떤 풍요를 누린다 해도 애굽은 나와야 할 땅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전의 야곱이라면 어디에서 살든 하나님께 복을 받아 풍요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풍요를 누리는 그곳을 하나님이 복을 주신 약속의 땅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풍요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자신이 영원히 쉴 것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살전 4:14절을 보면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처음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는 제물이 되심으로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음 받은 자들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신 뒤에 세상에 다시 오심으로 거룩한 백성을 완성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완전한 성취이고 언약을 믿는 신자는 이미 언약의 성취 안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죽은 자도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 안에서 자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잔다는 것은 언젠가는 깨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잔다는 것은 언약 안에서 기다린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조상의 묘에 장사되기를 바라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약속이 성취 되는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언약을 믿는 자로 세상에 미련두지 않는 것이고 신자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생존이 아니라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문제를 위해 약속을 세우신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약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생명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생존의 문제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생명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서 어떤 형편을 살든 괜찮은 것이 신자라는 뜻입니다. 신자에게 약속되었고, 약속의 성취로 인해 신자가 영원히 거할 곳은 분명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하심은 약속을 세우시고 약속을 기억하시며 우리의 어떤 행함에도 불구하고 약속대로 이루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하심 안에서 불안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됩니다.

 

 

야곱처럼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라면 바로 오늘이 죽을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 죽을 날을 앞두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죽지 않았다면 그것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일 뿐입니다. 신자는 산다는 것에 대해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죽었을 때 나에게 가장 귀하고 필요한 것에 마음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조상의 묘에 장사되고자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야곱의 인생의 가치를 평가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모든 소망을 두면서 죽음 후에라도 약속 안에 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야곱이 되었다는 것이 하나님이 끌어 오신 인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합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기 인생을 험악한 나그네 길의 세월로 말했지만 험악한 나그네 길의 세월을 살아온 덕분에 하나님을 아는 야곱이 되었음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살게 하신 험악한 세월도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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