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9.17 17:26

(116강) 나를 기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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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8:15-22http://onlycross.net/videos/gen/gen-48152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설교>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믿음의 의미와 역사와 내용,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믿음으로 간주하는 이것이 믿음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의 잘못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온통 자신으로 향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이며 저주의 길로 가는 것임을 모릅니다. 오직 열심과 정성만 있으면 하나님도 내 미음에 감동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허구에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믿음이 자기중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참된 믿음은 인간에 의해 발생될 수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에게 믿음은 가능하지 않다’가 됩니다. 참된 믿음은 바로 이 점을 인식함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에게 믿음이 가능하지 않는데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그래서 나에게 믿음이 있게 하시고 믿음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거 하게 되는 것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는 배움으로 알아갑니다. 성경을 보면서 연구하고 지식을 쌓음으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론으로 구축된 지식일 뿐이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능력은 아닙니다.

 

 

배움은 삶으로 가능합니다. 이것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의 믿음이 자기 위주였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야곱의 관심이었고 그것을 위해 모든 노력과 수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믿음의 변화가 죽음을 앞둔 야곱의 말년에서 드러납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손을 바꾸어 축복합니다. 오른손을 차남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장남 므낫세의 머리에 얹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야곱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본래 야곱이 생각했던 축복은 장남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은 자격과 권한이 있는 사람이 받는다는 것이 야곱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손을 바꾸어서 오른손을 차남의 머리에 얹음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생각이나, 자격과 권한이라는 조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에 대한 이러한 내용을 그의 삶에서 배웠습니다. 무엇 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천사를 만나 씨름을 하게 되면서 다리를 절게 됨으로 힘을 잃어버리는 것을 통해서 축복에 대한 자신의 모든 생각이 틀렸음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축복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 야곱이 15,16절에서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는 말을 합니다.

 

 

야곱의 축복의 내용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 내용이 축복으로 다가옵니까? 아닐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의 말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기대하는 축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축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축복의 참된 의미를 알기 전의 야곱의 생각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에 대한 세상의 상식은 성공으로 인한 자기 확대입니다. 자신이 확대되지 않은 축복은 축복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은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야곱처럼 삶에서 축복이 무엇인지 참된 의미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과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배워서 알아간다는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하면서 가르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인물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삶을 간섭하심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야곱의 삶은 우리의 삶이 됩니다. 야곱의 삶에서 나타나는 그의 속성이 나의 속성과 일치됨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고 야곱에게 간섭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간섭하심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눈이 열린 것입니다.

 

 

15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으로 말합니다.

 

 

야곱이 배우게 된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이 자신을 출생부터 지금까지 기르셨음을 알게 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으로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이 동일한 뜻과 방식으로 요셉의 아이들을 간섭하시고 기르시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을 출생부터 지금까지 기르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팥죽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사고 이삭의 눈을 속여 축복을 받아내면서도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을 기르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독교인들도 야곱과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을 출생부터 기르셨다면 우리 역시 출생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르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르심은 육신의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르심에 의해 야곱이 하나님에 대해 눈이 열리고 축복을 배우게 된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기르심 덕분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며 믿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이 말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요셉의 아이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르심으로 생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직 축복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전의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장자에게 주어질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손을 바꾸어 축복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야곱의 손을 다시 바꾸기 위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라고 말합니다. 손을 바꾼 야곱의 축복이 요셉의 눈에 부당하게 보인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야곱이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고 말합니다.

 

 

혈통으로는 장남 므낫세가 큰 자입니다. 그런데 아우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므낫세 입장에서는 큰 자임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을 섬겨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미 리브가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섬기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 큰 자로 여김 받는 것이고 그것이 복이 된다는 것을 리브가에게 이미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알게 하고자 하시는 복의 세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이 복을 세상에 나타내신 것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배우고 알게 된 축복의 내용을 요셉과 그 아들들에게 나타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앞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은 축복에 대한 야곱과 같은 믿음입니다.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기르셨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복에 거하는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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