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10.08 17:47

(119강) 분량대로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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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9:26-28http://onlycross.net/videos/gen/gen-49262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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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설교>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축복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축복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곱의 축복은 기존의 축복관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축복관을 정립시키는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3절에서 야곱은 스불론이 해변에 거주하고 그 경계가 시돈까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라고 합니다. 나귀는 농사를 위해 필요한 짐승으로 연약한 존재를 뜻한다. 그렇게 보면 비록 건장하다 해도 결국 일을 많이 하는 나귀와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것이 잇사갈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고 고 말합니다.

 

 

잇사갈의 축복에는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긴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다스리는 강한 족속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를 받으며 순종해야 하는 약한 족속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이해하는 축복이 아닙니다. 세상이 이해하는 축복은 연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해지는 것으로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게 되고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차지할 분깃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잇사갈에 비하면 더 나은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6절의 단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속에서 그의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단 지파의 후손인 삼손이 20여 년 동안 사사로 지내면서 백성들을 재판하기도 했는데, 단지파의 축복의 성취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단에 대해서는 17절에서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고 말합니다. 독사는 작은 존재이지만 큰 소나 말도 죽일 수 있는 독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단이 비록 작은 족속이라 해도 큰 족속을 이기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절에서는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적의 추격을 받지만 도리어 적의 뒤를 추격하게 된다는 것은 적의 공격을 잘 막아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는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셀이 기름지고 소산이 풍부한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왕의 수라상을 차립니다. 아셀에게서 나는 것이 왕의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합니다. 놓인 암사슴은 자유롭게 뛰어다닙니다. 자유롭게 뛰어 다님으로 아름다운 소리, 즉 노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무성한 가지로 그에게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며 그 목자에 의해 팔에 힘이 있어 요셉의 활이 굳셀 것이라고 합니다.

 

 

27절에서는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고 말합니다.

 

 

이 역시 축복이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내용입니다. 물어뜯는 이리라는 것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포악을 행하고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차지하는 악한 기질을 빗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베냐민의 기질이 사울에게서 드러납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인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여인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다윗을 시기하여 마치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이리처럼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축복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축복과 저주가 섞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8절에서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야곱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야곱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축복하였다고 합니다.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것은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그에 맞게 축복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분량대로의 축복을 사람이 행한 대로 그에 맞게 축복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잘하면 잘한만큼 못하면 못한 만큼 축복이 다르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천국에서의 상도 행함에 따라 다르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격차가 있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마귀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도 격차가 있다고 생각해야 좀 더 좋은 선물을 많이 받기 위해 열심을 낼 것이고, 타인보다 좋고 많은 것을 받음으로 자신을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상급의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가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천국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아야 처지에서 구원을 받음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천국이라는 것을 포도원 품꾼 비유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입니다. 열 두 지파를 각기 분리해서 생각하면 누가 더 좋은 축복을 받았는가라는 비교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열 두 지파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열 두 지파가 곧 이스라엘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관계 안에서는 한 지파라도 제외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관계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많은 신자가 있지만 생활의 형편이 모두 동일하지 않습니다. 부요하다 해도 소유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자, 적은 자의 차이가 있게 되고,. 가난하다 해도 역시 그들 안에서는 조금 덜 가난한 자와 많이 가난한 자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을 생각하게 되면 많이 받은 자와 적게 받은 자로 나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몸의 관계에서는 나, 너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지체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에 속한 지체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역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몸을 세우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량대로’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 하는 도구로 세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우신 것이지 열 두 지파 하나하나를 세우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열 두 지파는 각기 주어진 역할에 따라 행하고 살아가면서 인간의 죄악 됨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스리시고 이끄시는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은 구원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베냐민처럼 물어뜯는 이리의 기질을 가진 족속에 의해 나귀처럼 연약한 족속은 물어뜯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악한 본성이며 구원될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 지파 속에 왕이 오시고 목자가 오심으로 구원될 수 없는 자가 구원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로 인해서 드러나고 증거 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국 구원될 수 없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에 의해 구원 받으며 그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축복의 세계는 구원 될 수 없는 자가 구원되면서 자신이 어떻게 구원되었는가를 노래합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 우리는 늘 죄를 드러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분량입니다. 주어진 분량대로 살아가면서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는 그것이 모두에게 동일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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