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10.15 15:52

(120강) 야곱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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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9:29-33http://onlycross.net/videos/gen/gen-49293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설교>

야곱은 147년을 살고 세상을 떠납니다. 147년 동안 야곱은 수많은 일을 겪습니다. 그렇다면 147년의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복된 절정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저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를 만나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어 절게 된 그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야곱에게는 그 일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전환점이 되었고 축복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때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복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 또한 가장 복된 순간은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야곱과 같은 경험이 없다 할지라도 말씀으로 인해서, 그리고 성령의 간섭으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무너지고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 복된 순간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 그리고 지금 어떤 모습과 형편으로 존재하든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간섭으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을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복으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주어진 것에서 자유하며 기쁨과 감사가 있는 삶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이 아들들에 대한 축복을 마치고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유언은 자신을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선조와 함께 장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굴은 막벨라 굴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헷 사람에게 값을 치르고 자기 소유로 삼아 사라를 장사했고, 뒤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와 레아가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은 왜 굳이 선조가 장사된 막벨라 굴에 자신을 장사해 달라고 유언하는 것일까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 죽은 후에 장례 문제나 시신 처리에 대해 유언을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유언은 단지 죽은 후의 시신 처리에 대한 부탁을 하는 의미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따라서 성경에서 언급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죽은 이가 어디에 매장되든 죽은 자에게는 무의미합니다. 매장되는 장소에 따라 구원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묻힌 곳에, 또는 아내가 묻힌 곳에 함께 묻히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았을 때의 생각일 뿐이지 어디에 묻히든 죽은 자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유언은 단순히 조상이 장사된 곳에 나도 장사되고 싶다는 의미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을 생각해 보면 야곱은 유언을 통해 아들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축복은 현실 세계와는 무관한 것들이고 1절에서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말씀한 것처럼 언약의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축복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이루실 일이라면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될 아들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하신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147세의 인생에서 그것을 배운 것이고 자신이 배워 알게 된 하나님을 아들들이 알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유언에 담긴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막벨라 굴에 대한 이해는 언약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었을 때 가나안 땅에 있는 막벨라 굴을 그냥 주겠다는 헷 사람의 호의를 물리치고 굳이 값을 치르고 자기 소유로 한 것이 언약을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막벨라 굴은 가나안에 거주하는 헷 족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이 거주하는 땅을 포함하여 가나안 땅 전부를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자기 후손에게 주어질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알게 된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 것입니다. 그 증거가 이스마엘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하나님이 약속의 아들을 주실 것을 말했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도 웃었을 뿐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나이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언약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언약을 믿지 않았다면 사라를 헷 사람의 땅인 막벨라 굴에 장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족속의 땅을 매장지로 삼는다는 것은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세월이 흘렀을 때 헷 사람에게서 아브라함이 잊혀질 수 있고, 후손들 역시 헷 족속을 땅을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고 조상의 묘를 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벨라 굴을 사고 장사한 것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그 땅이 후손에게 주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언제이든 반드시 이루시고 이루어진다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알게 된 하나님도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들들 역시 자신이 알게 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축복이 그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이스라엘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막벨라 굴에 장사된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의 뜻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막벨라 굴에 장사된 사람들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자기 뜻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뜻이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반면에 신자는 세상이 하나님의 뜻 아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뜻이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자신의 유익이고 복임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에 의해서 배워가고 알아가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이들에게 축복은 하나님이 손에 붙들려서 배워가며 바뀌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야 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두려움이 없는 평강을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의 유언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내 쪽에서 정성과 열심을 보이면 그 보답으로 나의 뜻을 이뤄주는 분이신지 아니면 야곱이 배우고 알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47년의 야곱의 일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의 상황으로 밀어 넣으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에게 축복임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복의 사람으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가치를 알지 못하는 미련한 우리로 하여금 축복을 가치를 알게 하시는 은혜의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참된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최선이고 최고이며 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는 것만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붙들려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축복의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며 이 믿음이 우리를 평강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 끝나고 영원한 영광이 드러나고 시작됩니다. 신자는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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