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4.10.26 09:54

(2강) 네 생물의 형상

조회 수 407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겔 1:4-14http://onlycross.net/videos/eze/eze-0104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설교>

 

◉ 하나님과 이스라엘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인정하십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대개 보면 하나님의 종을 일을 많이 하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종은 주인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시를 받아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 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의 종을 목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출 21장에 보면 종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보면 종은 여섯 해 동안만 주인을 섬기고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만약 종이 주인을 사랑하여 자유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 주인은 종을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으라고 하십니다.

 

 

이 규례에 따르면 주인의 참된 종은 주인을 사랑하여 종신토록 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자유를 얻고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주인에게 속하여 주인의 뜻에 따라 살기를 기뻐하는 그가 바로 진정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종은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향한 사랑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어떤 삶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 주인을 사랑하여 종신토록 종이 되기를 소원하는 참된 종인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종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기 사랑에 묶여 자신을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나 깨나 자기 인생이 잘되기만을 소원합니다. 다시 말해서 종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참된 종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구도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적이 없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며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시는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바벨론의 공격을 받게 하시고 많은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을 사로잡혀간 백성들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 절망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입장에 있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을 선지자로 세우신 것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환상으로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고통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을 인간적 시각에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고 왕과 귀족과 백성들 할 것 없이 사로잡혀간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소망을 가지게 될까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이 자신을 어려움과 여러 재앙으로부터 건져주시고 지켜주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각이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고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생각은 고통 중에 있을 때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속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자연히 하나님께 기대를 걸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이 복음이고 진리이며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을 거의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생각하고 소망했던 하나님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사로잡혀가기 전에도 그들의 마음에는 그런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님을 깨닫게 하고 참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그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신 것도 그 이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네 생물의 등장 ◉

 

 

그리고 본문은 에스겔이 네 생물의 형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스겔이 보게 된 하나님의 모습과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네 생물의 형상이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실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네 생물의 형상과 활동을 통해서 인간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4,5절을 보겠습니다.“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폭풍과 큰 구름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큰 환난으로 집어넣으실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북쪽에서부터 오신다는 것이 그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북쪽에는 바벨론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북쪽과 폭풍과 큰 구름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앞세워 오셔서 이스라엘을 폭풍이 불고 큰 구름이 덮인 것 같은 환난에 있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렘 1:13절에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끓는 가마를 보게 되는데, 그 가마의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질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에스겔이 본 환상과 예레미야가 본 환상은 모두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을 봅니다. 그리고 6절부터는 네 생물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을 문자 그대로 그려본다면 네 생물의 모습은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바벨론을 앞세워 이스라엘로 오시는데 거기에 무시무시한 형상의 네 생물이 나타난 것은 무슨 뜻일까요?

 

 

네 생물은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합니다. 계 4장에 보면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이 있어 하늘 보좌를 보게 되는데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7)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본 네 생물은 에스겔이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라고 말한 네 생물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에스겔이 본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생물이 천사라는 것은 겔 10장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겔 10장에서는 에스겔이 그룹들을 보게 되는데 그룹이 천사를 지칭한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그 그룹들이 바로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보던 생물이었던 것입니다.(겔 10:15).

 

 

◉ 네 생물의 의미 ◉

 

 

그렇다면 천사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과 함께 나타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천사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심판하라는 것일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로 이미 바벨론을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심판이 목적이라면 네 생물은 등장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천사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히 1:14절을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천사는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네 생물은 이스라엘의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섬기기 위한 존재로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북쪽으로부터 폭풍과 큰 구름으로 오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환난 가운데 있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을 섬기는 천사들을 함께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아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생물은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 네 얼굴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울고, 무엇을 먹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 생물은 비록 얼굴은 우리가 잘 안다고 해도 그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7-8절을 보면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의 사람, 사자, 소, 독수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네 생물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확하게 상상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생물들의 특성대로 활동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생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소의 특성대로 활동하고 먹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코 우리가 아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은 네 생물의 활동 또한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생물의 얼굴만 보고 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할 뿐 하나님의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무지한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난 것은 천사가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여 부지런히 활동하고 일하면서 이스라엘을 돕고 섬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난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송아지는 일을 하는 동물입니다. 따라서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난다는 것은 이미 네 생물이 이스라엘을 위해 활동하고 일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심판에 담긴 은총 ◉

 

 

하지만 이스라엘이 과연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천사가 자신을 섬기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자신들만 있으며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현실과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력한 자신들을 보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천사가 여러분에게 활동하며 여러분을 섬기고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까? 사실 성경을 보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지 천사가 우리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의 활동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생물의 얼굴을 안다고 해서 네 생물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안다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얼굴은 알았지만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는 몰랐던 그들이야 말로 예수님을 모른 자들이었습니다.

 

 

네 생물의 모습이 우리에게 참으로 생소한 것처럼 그 활동 또한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활동합니다.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12절)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활동이 생소하게 다가온다면 하나님의 일하심 또한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4절에 보면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라고 말합니다. 13절에서는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불이 곧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불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판을 받아야 할 저주의 자식임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그들을 참된 백성이 되게 해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에 붙들어 놓기 위함인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주기 위해 심판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심판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어떤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원히 하나님의 종으로 존재하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삶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설사 심판과 환난을 들고 다가오신다고 해도 거기에는 생명이라는 은총의 선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선물을 보는 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