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2.27 17:27

(89강) 요셉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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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7:5-11http://onlycross.net/videos/gen/gen-3705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설교>

야곱의 족보는 요셉 이야기로 시작되고 요셉의 이야기는 요셉의 꿈으로 시작합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요셉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즉 요셉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고자 하신 것이 요셉의 꿈이 지니고 있는 의미이고 요셉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가령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갈 때나 하란에서 돌아올 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것입니다. 따라서 꿈을 꾸었다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 어떤 증거를 받은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계시가 완결된 지금에 있어서는 꿈이 계시 전달의 방편으로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미명 아래 교회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기도 합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등장하는가 하면 꿈을 하나님의 뜻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해석해 줌으로써 결국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계시에 대해 큰 오해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의 시대에 꿈은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꿈이라 해도 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임을 잊고 있는 것이고 자기체험에 매몰되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요셉의 꿈을 비전(vision)으로 연결하여 말하기도 하는데 그 또한 성경과 무관한 말일 뿐입니다. 비전의 의미를 가진 꿈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평소 형제들의 절을 받는 위치에 있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기에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입니까? 누구든 요셉의 꿈을 이런 의미로 이해하고 말한다면 그는 성경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하는 자일뿐입니다.

 

 

요셉이 꾼 꿈은 두 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형들과 곡식 단을 묶고 있을 때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 꿈을 요셉이 자신들의 왕이 되고 다스리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야곱과 형들에게 말하자 야곱이 요셉을 꾸짖으며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의 꿈대로 되어졌을까요? 형들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갔을 때 국무총리가 된 요셉에게 절을 한 적은 있지만 야곱이 절한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 명단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야곱의 부인들은 애굽으로 가기 전 이미 죽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과 야곱의 부인들은 요셉에게 절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때문에 요셉의 꿈은 단순히 요셉이 국무총리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부모와 형제를 다스리게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요셉의 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곱의 축복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 27:29절을 보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형제는 에서뿐인데 형제들의 주가 된다고 축복하는 것은 이 축복이 야곱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즉 요셉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하신 약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창 35:10-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역시 야곱이 이룰 축복의 내용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약속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약속을 주신 것은, 야곱 때에는 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힘과 수단을 동원하는 속성으로 살았다면, 이스라엘의 속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이루심을 믿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증거 하는 역할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됨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요셉만을 본다면 요셉을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요셉을 세워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본다면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존재 의미이며 오늘날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의 힘으로 뭐가 이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신자는 그 같은 사실을 자신의 삶에서 깨닫고 확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장담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헌금하겠습니다’‘주일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전부가 내 뜻과 힘으로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고 교회를 나오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러한 여건과 형편을 허락하신 결과이지 우리의 뜻과 의지의 결과가 아닌 것입니다.

 

 

요셉의 꿈에 대한 형들의 반응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는 것이었고 야곱 또한 화를 내었습니다. 어린 요셉에게 모든 가족이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부모와 형으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린 이러한 반응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습니다. 아마 요셉도 야곱도 형들도 요셉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요셉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해줬다면 꿈의 내용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꿈 내용 자체가 형들에게 불만이었기 때문에 설사 계시라는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은 반발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드러난 인간의 본래 모습입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며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모든 삶을 부정할 때 반발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 되면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이며 따라서 예수님을 못 박은 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꾼 것으로 인해서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버림을 받아 애굽으로 종으로 팔리게 되고 그곳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등 고난을 받다가 국무총리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셉의 인생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둡니다. 고난을 받았으나 꿈의 내용대로 절을 받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계시가 우리를 고난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계시를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품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고난을 받게 됩니다. 즉 십자가를 믿는 신자가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가고자 하는 것 자체가 고난인 것입니다. 이 길을 세상의 복으로 희석시키고자 한다면 그가 바로 거짓선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꾸는 꿈이라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일 뿐입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원하는 꿈이 버려지고 대신 하나님의 계시에 마음에 붙들리고 계시가 이끌어 가는 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길을 소망하며 그 길에 순종하게 되기를 소원하는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는 신자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이러한 순종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속에 살아있는 신자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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