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3.05 16:52

(90강) 버림받은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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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7:25-28http://onlycross.net/videos/gen/gen-37252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5.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설교>

요셉이 꿈을 꾸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요셉은 처음에는 자신이 꾼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꿈이 하나님의 계시였음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는 언약을 담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이 언약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보여주심으로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 홀로 행하신 것임을 나타내시는 것이기에 요셉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꿈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요셉에게 머리를 숙이고 절하는 일은 형으로써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된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계획합니다.

 

 

20절에서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고 말한 것처럼 요셉을 죽여 버리면 요셉의 꿈도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악함까지 도구로 이용하시어 뜻을 이루시고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어떤 훼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뜻하신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요셉을 죽이기로 계획했을 때 르우벤은 구덩이에 던지고 죽이지는 말자고 합니다. 22절에서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고 말한 것처럼 르우벤은 요셉을 형제들을 손에서 구출하여 야곱에게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오자 그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빈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유다가 형제들에게 요셉이 동생이고 혈육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손을 대지 말자고 설득합니다. 그렇게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이십에 팔리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꿈과 믿음을 가진 한 인간이 여러 가지 재난을 겪으면서도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잘 이겨내어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된 성공신화에 초점을 두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는 꿈을 가지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떤 역경이 와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디고 이기면 결국 꿈을 이루게 된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흘러가기 십상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단지 꿈 하나 때문에 비록 이복형제라고 하지만 어쨌든 야곱의 아들이라는 형제 관계에 있는 요셉을 죽이려고 작당하였다고, 상인에게 팔아 버린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요셉과 형들의 불화는 꿈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2절에 보면 요셉은 평소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서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에게 대해 미운 마음이 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였다는 것은 마치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잘못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고 책망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말하고 죄를 드러내는 설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편이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마치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편이라는 것은 우리의 입장과 사정을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편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가 증거 되는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불만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하나님에 의해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꾼 것처럼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초라한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분노하게 했고 결국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형제들에게 의해 버림받은 요셉에게서 예수님의 버림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은 유대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또한 여전히 예수님을 버리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팔아 버리는 것으로 요셉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고 따라서 요셉의 꿈 또한 자신들과 무관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하시고 요셉을 버려 버린 형들을 요셉에게 나오게 하셔서 만남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과 요셉의 형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없는 불화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버렸습니다. 요셉으로서는 큰 상처가 되는 일일 수 있고 형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복수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들을 만났을 때 요셉에게는 나오는 것은 형들의 모든 것을 덮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셉과 형들의 관계에서 또한 드러나는 것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환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여전히 예수님을 버리며 나의 이익을 좇아 세상을 택할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받아주시며 십자가 피의 은혜 아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존재로 세워질 뿐입니다.

 

 

창 45:4-5절을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돈을 받고 팔아 버린 자신들에게 보복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인데 보복은커녕 모든 일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일로 말하는 요셉에게 형들은 그저 부끄러움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만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앞에 나온 신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을 만난 형들의 입장이 오늘 우리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한 일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버린 부끄러운 자로 만나게 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바른 믿음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행함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접하는 반응은 죄는 그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죄보다는 신앙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긍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긍정적인 면입니까?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실력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위한 자기의 길로 갈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열심이고 그 열심을 고발하고 깨뜨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 앞에서는 인간의 열심도 당당할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고전 4:7절에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무엇도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주를 위한 열심히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에게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사실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버린 존재들일 뿐입니다. 세상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늘의 것을 버려버리는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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