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4.09 17:23

(95강) 해석은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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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0:1-8http://onlycross.net/videos/gen/gen-4001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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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설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요셉의 인생이 순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 때문에 애굽의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리는 인생이 되었고, 보디발 집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런 요셉의 인생을 두고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요셉의 형통은 요셉의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탄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요셉의 형통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짐을 의미합니다. 비록 자기의 인생이 원한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면 현재는 실패처럼 보인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형통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형통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초점을 두고 이해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요셉은 옥에서 애굽 왕에게 범죄 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애굽의 총리라는 지위에 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 앞으로 요셉에게 펼쳐질 인생입니다. 우리는 요셉에게 발생한 일들의 결말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요셉이 애굽에 팔리든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든 숱 맡은 자가 요셉의 일을 잊고 이 년의 세월이 흐르든 관심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현재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오 년 후 십 년 후에 부자가 될 것을 안다면 염려와 불안과 불평이 없이 현재를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앞일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늘 오늘의 일로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확실히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영광이 우리에게 있을 인생의 결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는 인생이며, 이 약속에 붙들려서 이끌려 가고 있음을 안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 참된 형통임을 알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각기 다른 꿈을 꿉니다. 그리고 요셉이 두 사람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보고 무엇 때문인지를 묻습니다. 그들을 근심하게 한 것은 자신들이 꾼 꿈을 해석할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꿈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으니 불길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심에 묻혀있게 된 것입니다.

 

 

8절을 보면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라고 말합니다.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꿈 해석은 하나님만 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그것도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께 붙들려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요셉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의 계시이고, 두 관원이 꾼 꿈도 그들의 운명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요셉의 꿈은 요셉을 세워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담고 있다면 두 관원의 꿈은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관원의 꿈은 그들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확정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해석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운명의 범위를 어디에서 어디까지로 생각합니까? 세상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를 운명의 범위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하고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팔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인간의 운명의 범위를 어떻게 말할까요? 엡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은 창세전에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창세전에 택한 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부르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하늘을 영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운명의 범위는 창세전에 시작되어 영원으로 계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님께 속한 신자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은 인생을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죽는가로 평가하지만 신자는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판단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인생에 대한 판단이며 시각입니다.

 

 

13절에 보면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술 맡은 자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사흘 만에 복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 맡은 자의 꿈에 대한 해석은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19절)라고 말한 것처럼 사흘 안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제 삼일, 사흘은 바로의 생일입니다. 그 날이 되자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자는 복직이 되고 떡 맡은 자는 사형을 당합니다. 생각해 보면 두 관원이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그리고 꿈을 꾸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다 해도 살 자는 살고 죽을 자는 죽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거나, 사흘 안에 죽는다고 한 떡 맡은 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는다는 해석대로 죽었을 뿐입니다.

 

 

결국 두 사람의 꿈은 ‘이렇게 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확정된 인생을 말할 뿐입니다.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확정되어 있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습니다. 물론 육신이 살고 죽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죽음과 생명에 대한 확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히 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현재의 삶을 현실로 인정합니다. 그들에게 성경의 내용은 꿈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실이 아니며 환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죄로 인한 영원한 사망,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인한 죄 용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영원한 생명,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의 세계, 이 모든 것에 대해 세상은 절대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을 수 있는 현실로 여기고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꿈과 같은 것으로 환상으로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세상에 확정된 참된 현실로 믿는 신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꿈이나 환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그대로 되어 질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게 하시고 해석하신 하나님이 해석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관원의 운명이 어떻게 갈릴지는 요셉의 꿈 해석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운명 또한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확정된 예수 안과 예수 밖의 운명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것이 크고 놀라운 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 안의 세계는 꿈이 아니고 환상도 아니며 하나님에 의해 확정된 약속이며, 따라서 반드시 실현될 참된 현실입니다. 신자가 바라보는 현실이 이것이라면 세상에서 살고 죽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함에 인생의 근거를 두게 될 것입니다.

 

 

죽는다는 해석을 들은 관원은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은 영원한 심판과 죽음에 대해 들어도 덤덤해합니다.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의 초라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재가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해석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복된 인생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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