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4.23 18:01

(97강) 총리가 된 요셉

조회 수 244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 41:37-45http://onlycross.net/videos/gen/gen-41374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7.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설교>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칠년 풍년 뒤에 칠년 흉년이 있는 것입니다. 칠년 동안 풍년이 계속된다면 풍년으로 인한 부에 취해서 흉년이 있을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대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계속되는 풍년을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로 생각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에 부를 누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뒤 엎는 것이 요셉의 꿈 해석이 아니라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칠년 흉년입니다. 설사 요셉이 흉년을 말했다 해도 종으로 팔려온 이방인의 말을 듣고 흉년을 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흉년이 온다 해도 자신들의 부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요셉의 꿈 해석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의 지혜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요셉을 애굽을 다스릴 총리로 세운 것입니다.

 

 

33-35절을 보면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요셉이 바로에게 제시한 칠년 흉년에 대한 대비책인데, 사실 대비책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비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칠년 흉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셉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풍년 다음에 흉년이 온다면 흉년을 대비해서 풍년이 있을 때 곡식을 비축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는 요셉의 말을 좋게 여기고 요셉을 애굽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일컫는 것입니다.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도 풀지 못했던 바로의 꿈을 요셉이 해석하고 애굽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흉년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요셉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알아본 것입니다.

 

 

바로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32절)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바로에게 꿈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지 않고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애굽의 누구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흉하고 파리한 암소가 살찌고 아름다운 암소를 먹는 것을 세상의 힘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흉년은 풍년 다음에 있을 미래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이미 확정되어 있는 미래임을 두 번의 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흉년이라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요셉이 말한 것은 풍년에 오분의 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해 각 성읍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풍년이라는 현재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흉년이 있음을 알고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풍년이라는 현재의 즐거움만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를 사는 신자의 삶에 대한 시각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말을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현재의 즐거움에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흉년이 있게 할 것이고 흉년이 풍년을 먹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현재를 즐기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는 것보다 장차 있을 흉년을 잊지 않는 것에 목적을 둘 것입니다.

 

 

꿈을 해석한 것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44절)고 말한 것처럼 애굽을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요셉이 애굽의 중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애굽은 요셉으로 인해 미래를 알게 되고 준비하게 됩니다. 애굽에 요셉이 있다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굽의 미래를 아는 요셉이 애굽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굽에게 함께 하는 요셉을 보면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잊기 쉬운 미래에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지만 애굽에서 총리가 되는 것은 요셉의 포부도 목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을 성공을 향한 비전을 가지는 것으로 말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성경을 팔아먹는 장사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꿈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람의 목표와 꿈을 이뤄주는 분으로 여기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에 미래를 정하셨고 때가 되면 그 미래가 현재를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되 어떤 미래가 작정되어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자신의 목표와 꿈이 있고 이룬다 해도 그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중심이 된 신자입니다. 세상의 해석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게 되고 자기 인생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40절을 보면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자신이 요셉보다 높은 것은 왕좌뿐이라고 할 정도로 요셉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왕좌는 왕이 앉는 자리이지 왕좌 자체가 왕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가 요셉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진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애굽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겼고 바로 조차도 요셉의 말을 듣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 이렇게 까지 요셉을 높이는 것은 요셉으로 인해 애굽이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굽을 자신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통치 아래 둔 것입니다. 심지어 기근이 들었을 때 백성들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했지만 바로는 요셉에게 가서 그가 이르는 대로 하라고 할 정도로 모든 통치권을 요셉에게 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요셉이 총리가 되었으니 요셉이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요셉이 있음으로 해서 애굽이 복 받은 것입니다. 총리가 된 것을 복 받은 것으로 여긴다면 요셉의 복은 결국 바로라는 이방의 왕을 통해서 주어진 결과가 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셉은 그리스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 복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애굽에 요셉이 존재한다고 해서 애굽이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임을 알고 그에게 애굽의 모든 통치를 맡기고 순종하였을 때 애굽에 기근이 계속된다 해도 기근에 삼킨바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이 있음으로 해서 애굽이 누리는 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에게 예수님이 복으로 존재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머리되심을 알고 순종하게 된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 아래 있음으로 해서 기근이 있을 때 삼킨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풍년만 있기를 기대합니다. 풍년만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풍년 속에 산다 해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근이 있다는 것입니다. 풍년은 기근에 의해 삼킨바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작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는 것이 기근에 삼킨바 되지 않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8 창세기 (108강) 애굽으로 간 야곱 신윤식 2016.07.16 2515
547 창세기 (107강) 바로의 호의 신윤식 2016.07.09 2298
546 창세기 (106강)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신윤식 2016.07.02 2457
545 창세기 (105강) 유다의 탄원 신윤식 2016.06.25 2335
544 창세기 (104강) 요셉의 의도 신윤식 2016.06.18 2365
543 창세기 (103강) 잃으면 잃으리다 신윤식 2016.06.11 2231
542 창세기 (102강) 야곱의 자식 편애 신윤식 2016.06.04 2368
541 창세기 (101강)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2) 신윤식 2016.05.28 2402
540 창세기 (100강)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 신윤식 2016.05.14 2635
539 창세기 (99강) 가나안 땅의 기근 신윤식 2016.05.07 2360
538 창세기 (98강) 풍년과 흉년 신윤식 2016.04.30 2416
» 창세기 (97강) 총리가 된 요셉 신윤식 2016.04.23 2448
536 창세기 (96강) 바로의 꿈 신윤식 2016.04.16 2366
535 창세기 (95강) 해석은 하나님께 신윤식 2016.04.09 2314
534 창세기 (94강) 옥에 갇힌 요셉 신윤식 2016.04.02 2647
533 창세기 (93강) 요셉의 형통 신윤식 2016.03.26 2571
532 창세기 (92강) 유다와 다말 신윤식 2016.03.19 2785
531 창세기 (91강) 야곱의 절망 신윤식 2016.03.12 2326
530 창세기 (90강) 버림받은 요셉 신윤식 2016.03.05 2423
529 창세기 (89강) 요셉의 꿈 신윤식 2016.02.27 3386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