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4.30 17:32

(98강) 풍년과 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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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1:53-57http://onlycross.net/videos/gen/gen-41535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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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3.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설교>

칠년 동안 풍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흉년을 예상하여 대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칠년 동안 풍년이 계속된다면 누구라도 풍년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풍년이 사라지고 흉년이 시작되어 먹을 것이 사라지게 되면 풍년에 대한 기억은 잊을 것이고 다만 흉년이라는 상황에 대한 원망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습성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풍년만 계속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풍년이 있게 하시고 흉년도 있게 하십니다. 흉년이 없고 풍년만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 구원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헛된 소망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합니다. 풍년만 계속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인간의 바램을 외면하시고 풍년과 함께 흉년도 있게 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세상에 대해서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고통이 없는 평안만 계속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평안과 함께 고통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풍년이라는 행복과 평안만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흉년을 주지 않으시고 풍년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풍년을 당연하게 여길 뿐 감사하는 마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흉년이 있게 되면 그동안 누렸던 풍년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기보다 원망과 불평으로 반응할 뿐입니다. 따라서 풍년과 함께 흉년이 있어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는 인간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 대로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합니다. 54절에서 각국에 기근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흉년은 애굽만 아니라 온 땅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만 먹을 것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요셉으로 인해 흉년이 있을 것을 알고 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 또한 흉년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대비도 없으며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굶주리고 죽어야 합니다. 결국 애굽의 구원은 그 누구의 힘이 아니라 요셉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입장에서는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리게 하시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하시고, 옥에서 관원을 만나 그를 통해 바로를 만나 그의 꿈을 해석하게 된 모든 일이 은혜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칠년 기근이 온 땅에 임했다면 애굽의 풍년 역시 온 땅에 주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굽만 풍년으로 풍요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풍요를 누려온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역시 온 땅에 칠년 기근이 들었을 때 곡식이 애굽에만 있었다는 것은 애굽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계속되는 풍요에 취해 살았다는 뜻이 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세상이 현실을 사는 습성입니다.

 

 

전도서 3장을 보면 1-8절까지 때에 대해 말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를 주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주어진 때에 순종할 뿐입니다. 죽을 때, 울 때, 슬퍼할 때, 헐 때, 잃을 때 등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때는 내 인생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바램을 따라 일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에 따라 나고 죽고, 심고 심은 것을 뽑고, 울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신자는 자신을 울게 하고 슬퍼하게 하는 일이 닥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때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웃고 춤추었던 일 또한 하나님이 주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는 불평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울고 슬퍼하는 일에서 불평한다면 그동안 웃고 춤추었던 모든 일을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것으로 여긴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때는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풍년과 흉년에 대해서는 그 때를 요셉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칠년입니다. 풍년이 칠년 동안 계속되면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칠년간 계속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때를 알았으니 애굽에 요셉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요?

 

 

흉년이 언제 시작되는지 그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흉년이 시작되는 때가 있음을 믿고 풍년이 있을 때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요셉이 때만 알려주고 애굽에서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애굽은 때를 잊어버리고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풍요에 붙들려 살았을 것입니다.

 

 

갈 4:4절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시고 다시 오시는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따라 되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 아래 있는 우리의 관심은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것에 있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되어질 하나님의 일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대비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대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전부로 여기지 않고 세상의 풍요가 끝나고 기근의 때가 있음을 알고 사는 것이 신자에게 있어야 할 대비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을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6,57절을 보면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고 말합니다.

 

 

기근으로 인해서 각국의 백성들이 요셉에게 옵니다. 요셉에게만 양식이 있다는 것은 요셉만이 살길이라는 뜻이 됩니다. 기근으로 인해 요셉의 온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지만 흉년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때는 각국 누구도 요셉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요셉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풍요롭다고 생각되는 때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이도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도 예수님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풍요 속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하지만 기근이 시작되면 우리를 살리는 양식은 예수님께만 있음이 드러납니다. 신자는 그 때가 있음을 믿고 풍요의 시대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참된 양식임을 믿습니다. 때문에 세상의 것으로 풍요롭지 않다 해도 예수님이 우리의 만족이 됨을 배우는 것입니다.

 

 

풍년의 시대는 흉년으로 인해 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끝납니다. 신자는 이것을 알기에 세상이 가치 없게 여기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근의 때, 즉 세상의 마지막을 대비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풍년 속에서 흉년의 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을 바라보고 방주를 준비한 것처럼 현재의 풍요가 전부가 아님을 알고 주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눈에 보이는 평안에만 마음을 두지 마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역력히 드러날 때가 있음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 때가 되면 참된 지혜는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이야 말로 세상의 끝을 아는 사람이 취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처럼, 세상을 알고 마지막을 아는 신자가 취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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