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5.07 17:22

(99강) 가나안 땅의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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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2:1-5http://onlycross.net/videos/gen/gen-42010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설교>

우리의 인생에 가장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셨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초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벌리신 사건입니다. 우린 다만 예수님의 일방적 사건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기만 할 뿐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으로 인해 누리는 혜택의 가치와 고마움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예수님으로 인한 혜택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혜택이 주어지기를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서로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애굽에 곡식이 있다고 하니까 가서 사오라 하고 야곱의 열 아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애굽과 온 땅에 임한 기근에서 야곱이 거주하고 있던 땅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속성은 세상은 다 망하고 고통을 받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평안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속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실패와 고통이 있으면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어서 징계를 받는 것인지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번성해봐야 예수를 알지 못하면 그 결국은 영원한 사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와 사랑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망에서 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면 육신도 번성케 하시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많은 교회가 ‘영육구원’이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가르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그런 신은 우상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영육구원을 바라고 이방 나라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신분아래 영혼 구원을 이방의 신으로는 육신이 잘되는 구원을 위해 우상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망에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셔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은혜와 사랑을 증거 하라는 뜻입니다. 은혜와 사랑이 증거 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힘으로 살며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일에 이스라엘은 실패하였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곧 우리의 실패를 대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고 고통의 자리에 밀어 넣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약함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는 자의 육신을 잘 되게 하시고 번성케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한 무지한 자들의 망언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야곱의 집에도 기근이 임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의 말씀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는 땅에 기근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든, 복이든 모든 것은 세상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을 때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야곱의 현실은 기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현실일 뿐 참된 현실은 기근에 담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뜻하시고 이루시는 일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근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기근이라는 현실에서 하나님만 신앙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야곱이 기근으로 곡식이 떨어진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열 아들을 애굽으로 보낸 것도 육신의 문제에 붙들려 있는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구원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구원 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부각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는 나의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이든 말씀은 유효합니다. 그래서 말씀 안에 있는 것이 복이며,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기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일에 ‘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 6:9-10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에 속한 자로 남겨 두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은혜고 사랑이라면 신자의 모든 현실은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현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보다 더 좋은 것’을 현재 내게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현재보다 더 좋은 것이지만 구원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을 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에 속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원에 속한 것에 비해 가치 없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세상에 속한 것의 가치를 배설물로 평가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미국에서 시작된 실용주의에 매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용주의는 진리의 기준을 현재의 실생활에 유용하느냐에 두고 그 가치를 판단합니다. 만약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다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진리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이기에 실용주의의 시각에서 보게 되면 십자가 복음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실생활에 도움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이 야곱의 생활에 도움을 준 것이 없습니다. 기근이 임했을 때 하늘에서 곡식이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가야 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육신의 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물론 도움이 되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우리를 돕는 것이고 말씀의 도움이 있기에 구원에 속한 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살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관심입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관심은 모두 육신의 문제일 것입니다. 하루 종일 복음을 생각하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각한다 할지라도 잠깐 스쳐가는 정도이지 삶 자체가 복음을 향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책망하시며 붙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생명의 길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절망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지 현실로 인해 절망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현실적인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미 더 좋은 하늘의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로 죄가 용서되고 구원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더 좋은 것입니다. 신자는 기근에서도 더 좋은 이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은혜와 사랑의 세계입니다.

 

 

야곱은 애굽에 있는 곡식이 기근에 있는 자신을 살리고 죽지 않게 한다고만 생각할 뿐 기근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잊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기근을 동원하여 애굽으로 밀어 붙이는 것입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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