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5.14 17:42

(100강)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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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2:6-11http://onlycross.net/videos/gen/gen-4206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설교>

신자는 역사 속에서 나그네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나그네의 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그네의 길은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성공의 길이 아니고 소유하고 잘 되는 길도 아니며 자기 자리를 확보하는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그곳에서 나그네의 길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나그네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과 불평으로 반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 죄를 자각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에서도 그 같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애굽과 온 당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야곱이 거주하는 곳도 예외 없이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곡식을 사러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고 요셉은 형들과 만나게 됩니다. 형제들의 상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고 다만 빨리 곡식을 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기근을 겪고 있는 야곱의 형편을 알면서도 쉽게 곡식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들에게 정탐꾼의 누명을 씌어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만약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곡식이 없어서 곤란한 형편에 처한 것만 생각하고 형들에게 곡식을 주어 돌아가게 했다면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일을 포함하여 꿈을 해석하고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이 단지 요셉 한 개인을 위한 것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와도 상관없는 내용일 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정탐꾼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상인에게 팔아버린 일에 대해 복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복수를 하고자 했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형들의 죄를 추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형들을 정탐꾼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9절에서 요셉은 형들에 대해 꾼 꿈을 생각하고 정탐꾼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꿈이 형들을 정탐꾼이라고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가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야 할 내용입니다.

 

 

요셉의 꿈이 단순히 요셉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형들은 낮은 자리에서 요셉에게 절을 하는 것이라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형들이 엎드려 절을 했으니 꿈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형제들을 정탐꾼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정탐꾼이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11절)라며 정탐꾼이 아님을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애굽을 정탐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탐꾼이라는 요셉의 말에 억울함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정탐꾼이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12절)며 계속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갑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정탐꾼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13절)는 말로 자신들의 신상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여전히 정탐꾼임을 주장하면서 그들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막내 아우가 애굽으로 와야 한다고 하면서 한 사람을 보내어 아우를 데려오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옥에 갇히어 있으라 하면서 삼 일을 가둡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요셉은 부당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씌운 것이나 한 사람을 보내 막내 아우를 데려 오라 하면서 옥에 가두어 버린 모든 일들이 형들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처사일 뿐입니다.

 

 

요셉이 사흘 만에 돌아와서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자 형들은 결국 요셉의 말대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21-22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라고 말합니다.

 

 

결국 야곱의 아들들은 정탐꾼으로 몰아 붙이는 요셉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요셉을 팔아 버린 범죄를 생각하면서 요셉이 애걸 할 때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한 것 때문에 그 징벌로 자신들에게 괴로움이 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르우벤은 그 모든 것을 요셉에게 행한 일에 대한 핏값을 치르게 된 것으로 말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요셉에게 범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핏값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근이 있게 하셔서 애굽으로 가게 하시고, 그 곳에서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게 하심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요셉에 대한 범죄를 드러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13절에서는 요셉을 단지 없어진 아들로 말할 뿐입니다. 하지만 계속 정탐꾼의 누명을 쓰는 가운데서 자신들이 요셉에게 어떻게 행했던가를 생각하게 되고 비로소 범죄 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인에게 팔았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상인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요셉을 마음에 두었다면 애굽으로 가면서 요셉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곡식만 생각했습니다. 기근에서 살아남는 생존에만 관심을 두었고 정탐꾼이라고 하는 요셉 앞에서 정탐꾼이 아니라며 자신을 변호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말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요셉의 꿈에 담겨 있는 의미는 야곱 가문이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요셉을 세워서 야곱의 가문에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와 자비를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 가문의 생명이 구원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꿈의 의미를 알고 형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범죄를 생각하도록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자신들이 범죄 한 것에 대해 핏값을 치르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 것입니다.

 

 

창 45:5절에 보면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은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일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애굽으로 갔지만 하나님은 생존보다는 생명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일하신 것입니다. 기근도 역시 생명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존이 아니라 생명의 구원을 위해 은혜와 사랑을 배우고 알게 되는 길로 끌어가십니다. 그 과정에 기근이 있을 수 있고 실패와 억울한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일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의 죄를 생각하게 되며 용서의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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