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7.16 17:38

(108강) 애굽으로 간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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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1-7http://onlycross.net/videos/gen/gen-46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설교>

야곱에게 요셉은 죽은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돌아온 아들들에 의해서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죽은 자식이 갑자기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야곱의 아들들이 전해준 요셉의 말과 그가 보낸 수레를 보고 요셉이 살아있음을 믿고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속히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브엘세바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일까요? 야곱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길을 떠나기 전에 제사를 드렸어야 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창 26:24)는 말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 받았던 곳입니다. 하나님께 언약을 확인 받은 이삭이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혹 야곱이 자신의 모든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이 거주하던 땅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에 그 땅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3-4절)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셨습니다(창 15;13-14). 이미 하신 약속을 계속 반복하여 확인시키시는 것에서 우리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끌려가며 약속을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관심 밖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세우고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일하든 말든 자신에게 이익 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만 취미 생활의 일부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은 자라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명의 문제보다는 돈으로 사는 현실의 삶에 더 마음을 빼앗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산으로 갈 때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죽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 때문에 이삭이 살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에게 요셉은 죽은 아들이었습니다. 죽은 요셉이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도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고 현실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현실의 문제로 인한 염려와 두려움은 그대로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가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 역시 장차 주어질 현실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내려가시고 반드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약속하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현실의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후에 애굽을 점령하게 하셔서 그 땅에서 자손 대대로 편히 살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후에 다시 올라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야곱이 기거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는 것입니까? 결국 그 때문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리게 되고 그곳에서 고난을 받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은 분명 우리의 시각으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단지 애굽처럼 크고 강한 민족이 되게 하는데 뜻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애굽과 같은 크고 강한 민족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씀드린 것처럼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에 앞서 하나님은 요셉을 형들에게 버림받고 애굽으로 가게 하십니다. 즉 애굽에서의 요셉의 고난이 있고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존재 원리가 고난임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로 세워집니다. 고난을 원리로 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고난이 원리가 되고 방향이 되는 이상한 나라로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시고 반드시 인도하여 다시 올라오신다는 것은 야곱이 애굽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약속하신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 아래 있는 신자에게는 현재의 삶의 형편이 잘 산다 못 산다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 신자는 요셉처럼 형통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기존에 거하는 땅에서 자식들 거느리고 번성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삶입니다. 어려움도 고통도 없이 근심 걱정 없는 편안함을 누리다가 천국가고 싶은 것이 우리의 바램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를 존재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살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뜻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인생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항상 ‘꼬일 대로 꼬인다’는 느낌이 들도록 뒤틀면서 끌어가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 나의 뜻을 포기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자가 되게 하십니다.

 

 

야곱의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의 인생에는 애굽으로 이주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요셉 역시 애굽의 총리가 될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모두 애굽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처럼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믿음이 적어서 그런가’‘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신자의 인생은 형통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을 세상에 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내 일이 내 생각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을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삶도 믿음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으시면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뜻을 내려놓지 않고는 신자 된 길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부인되고 하나님의 일하심만 기쁨으로 남겨지는 것이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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