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10.08 23:52

(71강) 에서의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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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8:1-9http://onlycross.net/videos/gen/gen-2801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설교>

 

야곱이 속임수를 써서 이삭의 축복을 받아 내고 에서가 그 일로 분노하여 야곱을 죽이기로 마음먹습니다. 리브가가 에서의 생각을 눈치 채고 야곱을 밧단아람의 라반에게로 피신시킬 궁리를 합니다. 그리고 야곱을 라반에게 보낼 적당한 구실을 찾아 이삭에게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27:46절)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결혼을 구실 삼아 라반에게로 보내고자 한 것입니다.

 

 

에서는 40세에 헷 족속의 딸과 결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창 26:34-35). 리브가는 이 일을 구실로 삼은 것입니다. 자신이 헷 사람의 딸로 인해 삶이 싫어졌는데 만약 야곱도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사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말을 들은 이삭도 공감이 되었는지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당부하기를 가나안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며 라반의 집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이 일을 보게 됩니다. 6절을 보면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고 말합니다.

 

 

에서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이삭에게 축복을 받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부모의 명을 받아 밧단아람으로 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에서는 자신이 결혼한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한 원인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이삭이 자신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을 싫어했고 그 때문에 자신에게 축복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어떻게 합니까? 9절을 보면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고 말한 것처럼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에서의 속셈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딸이라면 아브라함의 손녀가 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서 결혼할 라반의 딸보다는 혈통으로는 이삭에게 훨씬 더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에서는 이삭에게 가장 가까운 혈통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면 이삭이 기뻐할 것이고 자신을 축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이스마엘의 후손은 언약 밖의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삭과 가장 가까운 혈통의 여인과 결혼하면 이삭도 기뻐할 것이라고 자기 멋대로 계산하며 오로지 복을 받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찾아 모방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서의 생각과 행동이야 말로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교인들에게 제시하고 교인들은 목사의 말대로 실천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제사하는 것들이 모두 선한 것으로 여기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이며 종교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교인들도 자연히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히 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즉 믿음이 있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 있음에 대한 인간의 시각과 기준은 뻔합니다. 모두 행위적인 것들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믿음 있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상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흔히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땅에서는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고 하늘에서는 천국 안에서도 좋은 집에서 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히 11:6절은 에녹을 두고 한 말인데 에녹은 알다시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간 사람입니다. 이것이 에녹에게 주신 하나님의 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상은 죽음을 보지 않는 하늘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나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속한 자로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게 하신 것이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 주어질 최고의 상입니다. 에녹은 이런 상을 기쁨으로 바라고 소망했던 사람이고 이것을 두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죽음을 보지 않는 생명의 나라를 상주시는 분으로 믿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신자는 땅의 것을 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땅을 것으로 자신을 더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은총의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거들입니다.

 

 

믿음이 있는 신자는 이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상을 받았음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으로 자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을 기쁘게 해서 축복을 받겠다는 에서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큰 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어린 자는 큰 자이신 예수님의 섬김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은 큰 자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더 큰 자가 되려고 경쟁하고 다투는 세상에서 어린 자의 위치에 있는 것을 복을 여기는 이상한 나라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큰 자 되기 위해 사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어린자임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면 어린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자의 복은 현재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눈이 열림으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은총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기뻐할 줄만 알았던 사람이 이미 주어진 생명으로 기뻐하게 된다면 더 이상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기죽지 않으며 당당하게 복음의 길로 가기를 소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 위에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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