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11.07 16:39

(74강) 라반에게 속은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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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9:21-30http://onlycross.net/videos/gen/gen-29213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1.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설교>

 

야곱이 하란 근처의 땅에 도착하여 양들을 몰고 오는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자신이 라반의 생질이며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하고 라헬은 라반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라반이 달려와 야곱을 영접하고 안고 입 맞추며 자기 집을 인도하여 들였다는 것이 본문 앞의 내용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거주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라반은 야곱에게 네가 비록 내 생질이지만 내 일을 그저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품삯을 어떻게 할지 말하라고 합니다. 라반의 말에 야곱은 두 딸 중에 라헬을 더 사랑하여 라헬을 위해 칠년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칠년을 일할 것이니까 라헬을 아내로 달라는 것입니다.

 

 

라반은 라헬을 타인보다는 야곱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면서 야곱의 요구를 허락하고 야곱은 라헬을 위해 라반의 집에서 칠 년 동안 섬겼지만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기 때문에 칠년이라는 세월이 길게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야곱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결혼식 때 라반이 라헬 대신에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갔고 야곱은 레아를 라헬로 여기고 동침을 한 것입니다. 아마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동안 에서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이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야곱은 원하지 않은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야곱이 칠년을 더 라반의 집에서 섬김으로 라헬을 얻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레아는 야곱의 계획에 없던 여인이었는데 라반으로 인해 야곱의 인생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우리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소원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생각했던 하나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하나님이셨고, 그것을 복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야곱의 생각대로라면 라반의 집에서 수고한 칠 년 뒤에는 라헬과 결혼하여 자식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은 레아와 결혼하게 되고, 비록 나중에는 라헬과 결혼은 하였지만 레아와 라헬의 갈등으로 인해 야곱의 가정이 편치 못했음을 생각한다면 야곱의 삶은 야곱의 뜻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야곱의 뜻대로 되었다면 야곱은 라헬과 결혼한 것으로 평생이 행복했을까요? 야곱에게든 인간에게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그 소유욕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족함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생이 뜻대로 되었다고 해서 만족과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내 뜻대로 안되는가?’로 인해 불만을 갖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를 위한 인생에만 매달려 왔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삶에서 주어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면 이삭에게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생은 꼬여만 갑니다. 축복을 받았는데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고생하여 라반의 집으로 가긴 했는데 속임을 당합니다. 분명히 야곱이 생각한 형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평소 속임수를 잘 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벌로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게 하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자신이 에서나 이삭을 속인 일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지만 설사 야곱이 라반의 속임으로 인해 예전의 자기 행동을 반성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인한 회개나 애통은 아닙니다.

 

 

가령 주일에 교회를 가지 않고 여행을 갔는데 사고로 발을 다치게 됩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주일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께 벌 받은 것으로 생각이 기울어집니다. 평일에 다치면 ‘하나님 더 크게 다치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도 주일에 다치면 자신의 죄와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종교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삭을 속였던 일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창 28: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말씀합니다.

 

 

‘내거 너와 함께 있어’‘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너를 이끌어’‘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이 구절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탐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의 중심에 자신을 두게 되면 결국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나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모든 일을 도와주시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킨다는 말 역시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 위험에서 건지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에 대한 세상의 이해고 해석입니다. 그리고 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 도움을 받을 조건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개입을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도움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 하시고 그를 이끄시며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야곱의 뜻을 돕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존재하는 야곱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야곱에게 세우신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히 담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자기중심의 시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야곱이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야곱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야곱에 비해 어떻습니까? ‘야곱은 사기꾼이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야곱이 에서와 이삭을 속이는 것은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에 대한 집착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야곱을 만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우리 자신입니다.

 

 

이런 우리의 관심과 목마름을 그리스도께로 바꿔 놓기 위해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함께 하시고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지키시고 이끄시며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과 이끄심과 지키심으로 인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인생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살게 한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왜 살게 하십니까?’라고 물으십시오. ‘나 같은 자에게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며 지키시고 도우시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십시오. 그 답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주어진 모든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에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셨음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능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속에 십자가의 은혜가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가는 신자 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이루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신자는 두려움 없는 신앙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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