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11.28 17:37

(77강) 함께하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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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1:1-5http://onlycross.net/videos/gen/gen-31010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4.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설교>

야곱의 재산이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고 하고 그 말을 들은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보자 라반 역시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곱에 대한 라반의 아들들과 라반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 피신 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비록 라반의 두 딸과 결혼하긴 했지만 야곱이 라반의 아들 된 것이 아니고 상속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야곱의 재산이 라반보다 더 번성해졌다면 라반의 아들들이나 라반의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 있겠다고 하신 것은 야곱이 집을 떠나 하란을 향해 가는 길에 유숙하면서 꿈을 꾸었을 때 하나님께 들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꿈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라반의 집을 떠나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시면서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신앙하는 신이 함께 해준다고 믿고 또 함께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것에 둡니다. 신이 함께 하면 재앙으로부터 보호 받고 신의 도움으로 자신의 일 또한 잘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의 함께 하심’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그렇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른 종교가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신의 속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라반의 집에 와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양과 염소를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라반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 하셔서 이루신 일은 재산 증식일까요? 물론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두 아내를 얻었고 자식도 낳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복을 받은 것입니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라반의 집에 왔는데 거기서 아내 둘을 얻었고 아들 열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분명 복을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곱이 원했던 아내는 라헬이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레아를 아내를 맞이하게 된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식 경쟁에 휩쓸리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베푸신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야곱에게 증식된 양과 염소는 정당한 방법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라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곱의 계획에 의해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야곱의 좋지 않은 계획을 도운 것이 되고 그로 인해 라반이 손해를 본 것입니다. 과연 이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야곱의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나를 부자 되게 하신 것만 생각하며 은혜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라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부당하고 불공평한 분입니다. 야곱의 정당하지 못한 계략을 도우신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재산이 증식된 것을 두고 무작정 하나님의 함께 하셔서 도우신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잘못된 시각 중의 하나가 결과론입니다. 되어진 결과를 기준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욥기서의 욥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한 복을 주시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고 140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고 죽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욥의 고난과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았음에도 믿음으로 인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처음보다 많은 복으로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도 그런 기준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의 집에 왔을 때는 미약하였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심으로 창대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만연한 간증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 도우심, 인도하심을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좋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도우신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죄가 있어서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야곱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도우셔야 할 가치와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많아진 것을 두고 하나님이 라반의 것을 빼앗아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말하지만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렇게 하셔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라반보다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야곱도 라반과 동일하게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탐심을 이루기 위해 술수와 속임수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양과 염소가 많아졌다는 결과를 기준으로 이해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경험한 것은 속임수와 경쟁과 다툼입니다. 그 속에서 야곱 또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하고 경쟁하고 다퉜습니다. 야곱이나 라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경험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속임수와 경쟁과 다툼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 급급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세상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드러내십니까? 이 또한 야곱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라 이름 하는 우리 또한 세상 속에서 본인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 속임수와 경쟁과 다툼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우리가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십니다. 한순간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함께 하심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야곱의 인생이 그의 뜻대로 되었습니까?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갔습니다. 이것이 함께 하심의 의미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셔서 내가 나를 알게 되고 볼 수 있는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내가 원한 대로 되게도 하시고 때로는 실패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 하시는 것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야곱이 부름 받은 것이고 언약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은 야곱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다루시는 그것이 야곱에게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야곱을 다루신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으로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다루심에 자신을 던져 버린 신자라는 모든 일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실패하고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함께 하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일임을 믿는다면 두려워 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믿음에 세워 가십니다.

 

 

우리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 함께 하는 하나님은 우상입니다. 탐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부르고 찾고 원하는 하나님은 실상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을 하나님이라 하며 정성과 열심을 보이느라 헌금을 하고 자기 소원을 빌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종교 세계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종교성과 탐심을 드러내시고 보게 하십니다. 때로는 일이 잘되게 하시고, 때로는 소원을 들어주시면서 탐심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죄임을 알게 하시고 비로소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셔서 이렇게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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