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12.12 19:35

(79강) 야곱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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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1:38-43http://onlycross.net/videos/gen/gen-31384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8.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설교>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야곱은 모든 재산과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라반 몰래 도망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라반이 야곱을 쫓게 되고 칠일 길을 뒤 쫓아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라는 말로 야곱이 자신 몰래 도망친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타박합니다.

 

 

라반의 말을 들으면 야곱이 잘못 처신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얼마든지 라반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라반으로 하여금 딸과 손자 손녀들에게 작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반의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절에서 라반은 야곱의 양 떼가 많아진 것으로 인해 야곱을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라반도 야곱도 잘한 것은 없습니다. 둘 다 탐심으로 가득하여 자신의 것을 채우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반이든 야곱이든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는 판단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본문의 내용이 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라는 존재가 라반이든 야곱이든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라반과 야곱의 탐심에 대해 판단하려면 적어도 판단자는 탐심과는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도 라반과 야곱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고 말합니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것에 대해 추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라반에게 야곱에 대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야곱의 행위에 대해 선악을 따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잘했다 못했다라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일방적으로 야곱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시각에서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도 잘못한 것이 있는데 왜 야곱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야곱이라는 사람의 인간됨이 아니라 야곱의 위치입니다. 인간됨은 야곱이나 라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치는 다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선택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고 증거 할 역할자로서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고 라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는 것은 비록 선택된 자로부터 인간의 악함과 죄가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를 증거하는 도구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의 선악을 타인이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을 수 있는 시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야곱을 선악간에 말한다 해도 결국 자신에게 섭섭하게 행한 것과 해를 끼친 일에 대한 추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것이 앞서 말씀드린 26-28절의 내용이고 30절에서 자신의 신을 훔친 일에 대한 추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라반에게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향하신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긴다면 우리에게서는 서로에 대해 선악간에 말하는 것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는 뜻이고, 따라서 그에게서 그 어떤 잘못과 죄가 드러난다 해도 하나님은 그 조차도 간섭하셔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길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라반처럼 행합니다.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말씀보다는 나를 섭섭하게 하고 해롭게 한 일만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판단과 비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동행하심에 있음을 신자라 이름 하는 본인조차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되 그 말씀의 뜻에 마음을 두지 않은 라반은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29절)는 말로 말로 야곱을 추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아니었으면 너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라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비판하지 말자’라고 하면서 비판할 수 있으나 비판하지 않는 것으로 마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에 담긴 뜻과 의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라반이 야곱과 라헬, 레아의 장막에서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입장이 바뀌어서 이제는 야곱이 라반을 추궁하게 됩니다. 38절부터 보면 야곱은 자신이 20년을 라반의 집에서 봉사하였는데도 라반은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꾼 일을 두고 추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라반에게 나타나 책망하신 것도 라반으로 하여금 자신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수고를 보시고 라반에게 나타나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도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이해하는 야곱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야곱의 어리석음과 탐심과 죄보다도 하나님의 선택이 더 강합니다. 때문에 야곱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이 뜻하신 야곱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의지고 열심인 것이지 나의 의지와 열심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함으로 된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면 지금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기어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백성의 존재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의지나 열심 등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열심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열심의 결과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복입니다. 그리고 이 복을 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은혜입니다.

 

 

본문 뒤에 보면 라반이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세우고 야곱과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52절)입니다. 서로 돌무더기를 넘어서 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라반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의 방식으로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라반은 그렇게 자기의 길로 갈 사람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백성 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 됨을 세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에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자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개입하신 길로 가는 것이 백성 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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